양양의 이명부를 배알하러 가는 양비로를
보내면서 이어 뜻을 붙임
(送楊毗盧謁襄陽李明府因以寄意)
사군님 일이 없어 중관을 닫았으니
빈 뜰에 형구(形具)가 한가함을 짐작하리
천리라 옛 친구는 아직도 적막한데
일 년의 봄 흥치는 하마야 늦었구려
형용은 쇠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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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당시(懷遠堂詩)-
峴山 李 僉知의 집 마루에 題하다
양양성 서쪽이 큰 언덕 북쪽에는
이 가운데 임천이라는 동네가 있네
산은 끊기고 물은 감도는데
단청은 신선의 집을 그려내었네
풍경은 습가지를 방불하니
정자와 누대에는 아름다운 나무 울창하네
주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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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당 가운데 비단 장막 나지막하고
석양이 막 화란의 서쪽으로 내려가네
오는 이 없이 문 닫아 적적도 한데
다만 산새만이 마음껏 울어대노라
梨雪堂中錦幕低
夕陽初下畵欄西
閑門寂寂無人到
只有山禽盡意啼
경함이 십년 만에 선관을 작별하고
삼월 명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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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 갑신년(선조 34년, 1604년) 7월 양양부 동산(洞山)에 사는 어부 지익복(池益福)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중, 바람이 그 배를 몰고 가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이렇게 일주야(一晝夜)를 달려 동쪽 한 섬에 닿았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인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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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낙산을 바라보며 (道中望洛山)
향로봉에 흩어져서 족운반이 지어지니
푸른 빛 쌓인 사이 채색 우리 노상 밝네
낙산사를 물어 하룻밤 자자 하니
길 가는 사람 멀리 오봉산을 가리키네
香纑散作族雲盤
彩暈長明積翠間
欲問洛迦禪寺宿
行人遙指五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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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장옥랑과 작별하녀 주어주며
(留贈巫山張玉娘)
천후산 앞에는 풀이 정히 꽃다운데
영랑호 호숫가 지는 꽃이 향기롭네
놀잇배에 봄을 가득 싣고 돌아가니
옥퉁소 드높아 하늘나라로 향하는구나
天吼山前草正芳
永郎湖畔落花香
畫粧載得春歸去
吹徹鸞簫向帝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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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 있어 호수는 넓고
흘러가는 놀잇배 가볍구나
연기 서리고 저무는 산 붉게 물들고
서리 내리자 저녁물결 맑네
뗏목길 은하수로 통하니
신선의 삶은 옥경과 같구나
피리 불어 서왕모 신선이 내려오니
동쌍성은 어디쯤 있는가
並海平湖闊
沿遊客棹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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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운경(權雲卿)이 양양(襄陽)에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5수. 이름은 권진(權縉)이다.
이름난 절 낙산사가 지어진 건 전 왕조
형승 보면 우뚝하게 특별하게 드높다네
말 듣기로 오경에는 일출 볼 수 있다 하니
흰 구름 쌓인 단상에서 붉은 물결 굽어보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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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부사 이효숙의 아내에 대한 만사
(李襄陽孝叔妻挽詞)
문헌 타고 길에 올라 끄는 말이 엄했으니
지난날에 일이 홀연 잘못될 줄 뉘 알았나
맺은 약속 맘에 걸려 괜히 절로 생각나나
다른 생은 꿈과 같아 기약하기 어렵다네
상자 속의 옛 수건엔 좀과 거미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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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承旨) 이경용(李景容)이
외직으로 나가 양양(襄陽)에 보임되어 가는 것을 전송하다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구한 것이다.
협로에서 당음 직에 한 해 넘게 있었는데
성은 내려 은대에서 입시함을 허락했네
서쪽 해가 엄자산에 가까워짐 겁이 나서
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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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만 가지 번뇌는 다 사라지고 萬慮今方盡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찾을 것만 같네 三山直可求
서풍이 싸늘하게 불어오는데 西風吹古劎
나 홀로 누대에 기대었구나 獨倚寶陀樓
『金剛山詩集』下篇
이춘원(선조 4년, 1572년~인조 12년, 1634년)의 본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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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洛山寺)에서 양양 부사(襄陽府使)인
이여복(李汝復) 경용(景容)종장(宗丈)을 만나서.
이날 눈이 크게 내렸다. 3수
누가 용왕 불러내어 옥가루 뿌리게 하였는가
머리 돌려 바라보니 절의 광경 새롭네
은백색 포말(泡沫) 거꾸로 쓴 푸른 바다요
봄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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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란 이 이름 시작된 게 언제인고
멋진 경치와 더불어서 성씨까지도 전해 오네
엄청난 물결과 맞싸우며 천 길 우뚝 솟은 누대
한 굽이 돌 때마다 깊은 연못 물 고였네
격류 속의 지주런가 처음에 눈을 의심타가
문득 상전벽해(桑田碧海) 세월의 변천을 깨달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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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峴山)의 구아(謳兒)가 감영(監營)에서
산중으로 나를 찾아왔는데, 바로 동양(東陽)의 시를 나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옛날에 노닐던 일을 떠올리며 앞의 시에 첩운(疊韻)하여 증정하였다.
2수
휘영청 달 밝았던 누각의 밤
복사꽃 흐드러진 완동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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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양(襄陽)의 이사군(李使君)에 대해서 같은 일가의 조카가 되는데, 나의 모친과 양양의 대부인(大夫人)이 똑같은 을묘생(乙卯生)이기 때문에, 내가 사군과 형제처럼 서울 에서 지내면서 수친계(壽親契)를 함께 결성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버이 봉양을 목적으로 외직(外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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