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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18. 중수 동해용왕묘비(重修東海龍王廟碑) / 교산(蚊山) 허균(許筠)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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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만력 갑신년(선조 34년, 1604년) 7월 양양부 동산(洞山)에 사는 어부 지익복(池益福)이 배를 타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중, 바람이 그 배를 몰고 가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이렇게 일주야(一晝夜)를 달려 동쪽 한 섬에 닿았는데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인도하여 왕국으로 데리고 갔다. 왕궁에 나아가니 정원에는 창을 든 병사의 경계가 매우 삼엄하였 다. 왕이라는 자가 보라색 옷을 입고 궁전에 앉아서 말하기를

    “내가 강릉에서 제사를 받아먹은 지 수 천년이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강릉부 사람에게 쫓기어 이곳에 옮겨와 보니 좋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상제께 호소하여 이제 비로 소 허락을 받았으므로 너의 힘을 빌어 관원에게 뜻을 전하고 옛 땅 내 집에 돌아가고자 하니, 너는 목민관 에게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군사를 몰아치게 할 것이니, 백성들이 나 의 해를 입게 될 것이다.” 하고는 바람을 몰아 돌려보내 주었는데 하루가 못되어 동해 가에 돌아왔다. 어부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으나 감히 관가에 나아가 스스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향임(鄕任) 이석림(李碩霖)에게 말하여 관에 보고하게 하였다.

    부사 홍여성(洪汝成)은 이 말을 듣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전고(典故)를 들어 상고 해 보니 가정(嘉靖-명 세종 연호) 병신년(중종31년)에 사당이 강릉부 정동촌에서 이곳으 로 옮겨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감히 귀신의 말을 인용하지 못하고 폐해가 많다는 이유로 옛 문서를 돌려주기를 방백(方伯)에게 청하였으나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해 을사년(선조 39년, 1536년) 7월 관동지방에 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안변, 통천에서부터 남쪽으로 안동까지 수십 군이 혹독한 수해를 입어 백성과 가축 죽은 수효는 수만에 이르렀는데 강릉이 특히 심하였다. 부사 홍공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여 지방 관리와 백성을 불러 의논하기를

    “귀신이 사당을 옮기지 않으면 해를 내린다고 우리에게 경고한지 1년 만에 수해가 이 지경이니 이는 과연 그 징험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의 힘으로는 옮길 수 없으나 그 사당 을 보니 퇴락하고 무너진 것을 보수하지 않고 있다. 어찌 우리가 서로 이를 새롭게 단장 하여 우리의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의 할 일을 수행하고 정성으 로 받든다면 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하니 모두 그렇다 하고 드디어 녹봉을 떼 내어 공장이와 인부를 모아 향임에게 이를 감독하게 하여 기와를 갈고 벽을 바르고 담장을 둘러쌓고 신문(神門)을 만들고 마당 고르는 일을 두어 달 만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나서 공이 몸소 제사를 지내니 이때부터 양양이 바람이 없고 해마다 풍년이 들 었다. 강릉부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여 비석을 세워 후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글을 청하기에 나는

    “우리나라는 사해 용왕을 위해 사당을 세웠고, 지리의 중앙을 가려 설치하였는데 강릉은 동해의 한 가운데이고 정동이며 더욱이 고을 한가운데가 상개(爽塏-앞이 탁 트여 밝은 땅)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정동이라 이름하고 신라 때부터 이곳에서 제사지냈다. 그런데 공희왕(恭僖王-중종) 때 강릉부 사람으로 장원급제한 심언경(沈彦慶), 심언관(沈彦光)형제 가 용왕의 사당에 비용이 든다고 하여 방백에게 말하여 상께 글을 올리고 까닭 없이 옮 겨버렸다. 근래 편찬한 여지서(輿地書)에는 '동해 용왕의 사당은 양양에 있는데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사당 자리는 낮고 더러워 귀신의 영을 평안히 하기에는 적 당하지 않다.‘고 하니 귀신의 노여움도 당연하다 하겠다. 언광형제의 몰락도 이것 때문 일 것이며 을사년 바람과 비의 변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신이 사람에게 밝게 고한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미혹하기 때문이다. 부사의 사당 개수는 예에 들어맞는 처사이니 어찌 그를 덮어 둘 것인가”하고 갖추어 기록하고 이에 송(頌)을 드린다.

     

    바다는 천지간에 海於天地

    가장 큰 것이다 爲物甚鉅

    그 누가 왕이 되어 孰王其中

    바람 불고 비 오게 하는가 以風以雨

    강하고 강한 용왕신이라 矯矯龍神

    하늘의 용은 이것 같음이 없네 天用莫如

    복 내리고 화 내림에 降福降沕

    신령스러운 응보 매우 진실하네 靈應孔孚

    그 누가 그 곳 낮은 데에 疇就其庳

    내 집 옮기게 하였는가 俾徒我宇

    적은 비용 아끼니 惜其小費

    신의 노여움 마땅하네 宣神之怒

    귀신이 계신 곳은 神之所都

    조개집 구슬 궁궐이네 貝闕珠宮

    세상의 오두막집 俗之陬居

    뭐라 연연하여 섭섭해 하겠는가 奚戀以恫

    아니로다 정성은 不然誠敬

    신의 흠향하시리라 神所享者

    불경한 자가 방자하고 不敬者慢 

    불선하면 게으른 법 不誠則隋 

    땅을 쓸고 물 떠 놓아도 掃地酌水 

    정성껏 공경하면 강림하리 誠敬則臨 

    좋은 자리 좋은 음식 차려 놓아도 

    玉寢瓊饔 방자하면 흠향하지 않는다네 

    慢則不欽 옮겨 놓고 더럽힘은 移以汚之 

    게으르고 방자한 일 卽隋則慢 

    어찌 제수의 많고 적음에 豈以豊殺 

    기뻐하고 탄식할까 而爲忻歡 

    알려줘도 안 따르니 告以不從 

    홍수피해 마땅하네 宜水之洪 

    온화한 원님이 溫溫邦侯 

    공경으로 신 받드리 事新以恭 

    새로 사당 단장하고 乃新其構 

    제수차려 제 올리오 乃腆其饗 

    신이 돌아보고 기뻐하여 神顧以喜 

    바람같이 와 흠향하네 風來悽愴 

    공경을 다 하여 정성껏 받든다면 克敬克誠 

    어찌하여 강릉, 양양 가리겠는가 奚擇江襄 

    원컨대 이곳이 길이 진정하시어 顧此永鎭 

    해마다 풍년들게 도와주시오 資歲禳禳 

    백성들 상하지 않으며 民無札傷 

    전란이 미치지 못하게 하오 五兵不入 

    길이길이 만년토록 於萬斯年 

    우리 고을 도와주소서 祐我獘邑

     

    『惺所覆瓿稿』附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