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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22. 권운경이 양양(襄陽)에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페이지 정보

    조회 23회

    본문

    권운경(權雲卿)이 양양(襄陽)에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며 5수.
    이름은 권진(權縉)이다.


    이름난 절 낙산사가 지어진 건 전 왕조 

    형승 보면 우뚝하게 특별하게 드높다네 

    말 듣기로 오경에는 일출 볼 수 있다 하니 

    흰 구름 쌓인 단상에서 붉은 물결 굽어보네

     

    신선의 땅 한 해 내내 시끄러운 일 없는데

    맑은 기운에 외로운 정자는 유월에도 추우리라 

    찬 자리서 졸다 깨자 오궤안은 고요한데 

    바닷바람 불어와서 죽피관을 떨구네

     

    습가지의 누관에는 먼지 오래 쌓였는데

    현산의 비문 몇 번 보아야 돌아오려나

    강한풍류 놀이 모두 헛일 되었으니

    녹문에서 모름지기 성씨나 찾아보리

     

    철에 따라 나는 진미 고을에다 올리나니 

    입 큰 농어 꼬리 붉은 방어 팔대어도 있네 

    좋은 시절 수연 열기 어느 곳이 젤 좋은가 

    긴 제방의 꽃과 버들 반여 끌고 가 보시게

     

    어린 시절 노닐 적엔 모두 머리 검었는데 

    순식간에 흐른 세월 몇몇 해가 지나갔나 

    근년 들어 만사 모두 맘 식은 지 오래건만 

    이별 정만 남아 있어 늙어서도 맘 상하네


    洛山名刹創前朝 

    形勝岧嶤特地高 

    聞說五更看日出 

    白雲壇上俯紅濤

     

    仙區終歲絕喧煩

    納灝孤亭六月寒 

    氷簟睡醒烏几靜 

    海風吹落竹皮冠

     

    習家池館久生塵 

    峴首殘碑閱幾春 

    江漢風流秪虛事 

    鹿門須覓姓龐人

     

    時羞簇案進官廚 

    巨口赬魴八帶魚 

    佳節壽筵何處好 

    大堤花柳引潘輿

     

    童丱相隨各髩蒼 

    轉頭時序幾炎凉 

    年來萬事休心久 

    只有離情老更傷

     

    『淸陰先生集』卷之二,送權雲卿赴襄陽 五首名權縉

     

    습가지- 진나라 산간이라는 사람이 양양에 살았는데 매일 습가지 연못에서 술을 마셔서 크게 취해 있었다고 함. 

     

    김상헌(선조 3년, 1570년〜효종 3년, 1652년)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 : 중년 이후 楊州 石室에 退歸해 있으면서 사용)•서간 노인(西磵老人:만년에 安東에 은거하면서 사용)이다. 선조 23년(1590년) 진사가 되고 1596년 전쟁 중에 실시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 字)에 임명되었다. 광해군 즉위년(1608년)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뒤 교리응교(應敎)•직제학을 거쳐, 광해군 4년(1611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인조 4년(1626년) 성절 겸 사은진주사(聖節兼謝恩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후 육조의 판서 및 예문관성균관의 제학 등을 지냈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 귀국하였다 1645년 특별히 좌의정에 제수되고, 기로사에 들어갔다.

    대제학,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野人談錄』• 『豐岳問答』가 있고, 『청구영언』의 가곡집에 시조 4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