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고지도와 각종 문헌을 확인한 결과 소동라령은 박달령(연수파)과 조침령 사 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고지도의 기록을 보면 양양부에서 소동라령까지의 거리를 60리라고 하고 있으나 이는 당시에는 거리를 측량하는 기술의 한계도 있지만 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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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동라령과 소어령, 북암령
2. 현지 실사를 통해서 본 소동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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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역사기록들을 바탕으로 소동라령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보고 자 한다.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유 금강산기』를 보면“(낙산사에서) 20리쯤 가서 양양 부(襄陽府) 앞의 냇가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 또 10리를 가서 설악에 들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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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 강원도(江原道) 간성군편에 보면 “미시파령(彌時坡嶺)은 고을 서남쪽 80리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는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는데 성종(成 宗) 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所冬羅嶺)이 험하다 하여 다시 이 길을 열었다.”고 적고 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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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색역의 역할
2. 소동라령과 오색역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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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驛)은 역관(驛館)·역참(驛站)·우역(郵驛)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찰방(察訪) 의 역무(驛務)는 주로 중앙과 지방관아 사이의 공문서를 전달하고 관수물자를 운송하며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 하여 보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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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역(五色驛)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462년(세조 8) 역제(驛制)를 41 역도(驛道) 543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오색역(五色驛)은 상운도(祥雲道)를 구성하는 하나의 속역이 되었다.
오색역은 1493년(성종 24)에 원암역으로 이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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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각종 문헌 등을 확인한 결과 과거의 소동라령, 오색령(한계령)은 일부의 주장 과 달리 모두 서로 다른 영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소동라령은 고지도, 고문헌, 경계의 기록, 하천의 수계, 양양부에서의 거리, 현지 답사 등을 종합한 결과 현재의 오색령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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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Ⅱ. 조침령의 고찰
Ⅲ. 조침령로의 변화
Ⅳ. 조침령로의 이용실태
Ⅴ. 맺는 말
조침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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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서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로 가는 조침령(鳥寢嶺)은 선질 꾼이나 마꾼의 바꾸미 길이었다. 그런데 418번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옛 조침령은 주로 구룡령에서 출발하여 갈전곡봉(1,204m) ⇒ 조침령 ⇒ 북암령 ⇒ 단목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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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문헌 속의 조침령
2. 조침령 이름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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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 홍주목사(洪州牧使)를 역임한 양와(養窩) 이세구(李世龜, 1646∼1700년)가 1691년 10월 3일 관동지방의 4개 군을 여행하면서 지은 기행문「동유록(東遊錄)」이『양 와집(養窩集)』에 실려 전하는데“조침령의 북쪽은 오색령이다. 그 동쪽은 양양(襄陽)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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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로는 문헌 모두‘조침령’이지만 한자 표기는 다양하다. 1691년 양와 이세구 (李世龜)의『양와집(養窩集)』「동유록(東遊錄)」에는 ‘조침령(曹砧嶺)’으로 되어있는데 “한 덩어리의 모탕 같은 영”이란 뜻이다. 즉 조(曹)는 덩어리나 무리를 뜻하며, 침(砧)은 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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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조침영로
2. 군사도로
3. 418번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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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침령은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주로 소금을 지고 넘나들었다고 한다. 조침령도 구룡령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길이 본래의 옛길이 아니다.
본래의 옛길은 지금의 조침령로보다 1.7㎞ 남서쪽에 위치한 쇠나드리 고개가 옛 조침령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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