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문헌 속 필여령2. 고문서에 나타나는 양양 지역 영의 순서3. 현대지도에 표기한 영의 순서4. 필여령 접근로의 변화(상행선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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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 중에 필여령(弼如嶺)에 대하여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서인『여지도서(輿地圖書)』와 양양부읍지(襄陽府邑誌)는 거의 동시대인 18세기 중반의 기록으로 내용도 비슷하다.이중 여지도서가 좀 더 세밀하다. 고문서에 대부분은 필여령(弼如嶺)으로 나오지만 『관동지(關東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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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영의 순서를 현대지도에 표기한 옛 양양부 서쪽 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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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대정6)에 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도를 보면 양양군청에서 필례(必禮)령과 오색령 까지 접근하는 길이 현재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1915년(대정4)에 측도(測圖)하고 1917 년에 제작을 완료하였으니 1915년 현재를 표기한 지도를 보면 아래와 같다.■ 대정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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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여령의 유래와 지명의 변화2. 마의태자와 피래3. 필례약수와 온천4. 태백산맥과 은비령의 무대5. 보부상의 바꾸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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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여령(弼如嶺)은 본래 필례령이었으나 '례'를 이두(吏讀)로 문자화(文字化)하는 과정에 서 '여(如)' 또는 '노(奴)'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필노령(弼奴嶺)은 노력을 아끼는 고갯길로 “지름길”이란 뜻이 있는데 오색령에 비하면 필여령이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옛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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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 계곡을 중심으로 내린천로 방향을 따라가면 대부분 지명이 군사용어 같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난리(亂離)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라는“피래(避來)”“필예(必曳)”는 은둔(隱遁)의 계곡(溪谷)에서 재기를 꿈꾸는 범상치 않은 곳임을 의미한다. 한계산성(寒溪 山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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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약수도 역시 “필예” 또는“피래” 약수로 불리는데 점봉산 서쪽인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1053-1 번지로 44번 국도 필례령 입구에 서 6㎞지점에 있다.『인제군지』는 1930년경 김씨 성을 가진 이가 발견한 약수라고 하지만 약수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 래됐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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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로가 포장될 즈음에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한 조정래 원작 『태백산맥』이 1994년 9 월 17일 개봉되었다. 필례 계곡이 영화 태백산맥의 전투 장면을 촬영했던 장소로 알려지 면서 명소가 되었다.또한 이순원이 1996년 발표한 소설로 ‘우주의 시간과 별의 시간을 견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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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령은 소동라령의 기능이 미시파령(미시령)으로 옮겨간 후에도 과객(科客)이나 양반, 관료들이 다니는 공로(公路)의 기능을 일부 하였다면 필례령은 보부상이나 “바꾸미 (物物交換)”하던 일반인이 넘어 다니는 지름길(捷徑) 이었다.부보상(負褓商)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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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례령은 한양 500리의 오색령과는 달리 동해안에서 만들어진 소금이 내륙인 영서로 전해지던 대표적인 “소금길”이자 지름길이었다. 양양에서 구운 소금, 말린 생선 등이 봇 짐으로, 혹은 나귀와 소의 등에 실려 필례령을 넘어가 인제에서 곡식, 나물, 버섯 등으로 교환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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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위치 및 식생Ⅱ. 영 이름의 변화와 고문헌 속 단목령Ⅲ. 단목령의 이용실태Ⅳ. 단목령을 마치며단목(박달)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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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령은 서면 오색 1리 오색분교 앞에서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진동리 설피밭까지 연결하는 북암령과 점봉산 사이의 안부(鞍部)를 지나는 고개(嶺路)이다. 예전에는 연수파 (連水波), 박달령(朴達嶺)이라 불리었는데 현대 지도에는 단목령(檀木嶺)으로 표기되어 있 다.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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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령(檀木嶺)은 동국지도(1724∼1776) 강원도 편에서 연수파(連水坡)로 기록된 후 대부분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다만, 팔도지도(1778∼1838)에서는 고개 파(坡)가 물결 파(波)로 변하여 연수파(連水波)로 표기하였다.광여도(1737∼1776)와 『대동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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