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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목록
      단목령은 오늘날까지 이용되는 영로(嶺路)이기는 하지만 생계 수단의 대표적 영로였기 때문에 공로(公路) 개념과는 거리관아가 있어 양반이나 문장가가 다니지 않아서 시문(詩 文)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양양부 에서의 거리와 방향만 표기한 글이 보이며 기린과 의 경계였음을…
      1. 조선시대 이전2. 조선시대3. 근대의 피난길 단목령4. 광복 이후
      인접한 양양군과 인제군의 군민이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양양의 소금·해산물 그리고 춘천계 기린현·인제현의 곡물을 『바꾸미(物物交 換)』로 교환하기 위하여 연수파(박달령)의 길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추측한다.이 시절에는 행상인이 마을을 …
      조선 정조시대에 육의전(六矣廛)을 제외한 금난전권(禁亂廛權)이 폐지되면서 장시(場 市)가 개설되어 보부상(褓負商)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장시에서 지역 특산품을 매입하여 생산되지 않은 지역으로 옮겨주고 품값을 받거나 판매하기도 하면서 온 나라의 경제를…
      가. 동학농민운동1860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장남 세정(世貞)은 영월, 양양, 인제 등지로 피신하여 생활하면서 그 지역의 교인들을 지도하였다. 동학에 대한 관가(官家)의 탄압이 심해지자 양양 김덕중(金德中)의 집에 피신해 있던 세정은 1870년 10월에 좀 더 안…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선질꾼은 존재했다. 6·25 이후에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단목령을 넘었는데 그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충현(여, 1929년생)한국전쟁으로 남편은 인민군에 끌려가 생사를 모른 채 돌아오지 않았고 전쟁 통에 집 은 불타버려 매우 어렵게 살았다…
      단목령에서 바꾸미들의 왕래(往來)는 1970년대 초반까지 행하여졌으며 그 이후에는 나물을 채취하고 말려서 내려오는 길로 이용되다가 1982년에「설악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1987년부터 입산이 통제되어 단목령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종주하는 사람만이 다니는 길…
      Ⅰ. 머리말Ⅱ. 소동라령의 위치와 의미Ⅲ. 현재 지명과 비교 및 실사Ⅳ. 오색역과 소동라령의 관계Ⅴ. 맺음말소동라령(북암령) 입구
      소동라령(현 북암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편에서 “요해(要害)는 본부(府) 서쪽으로부터 인제 경계 바드라재[所等羅嶺]로 가는데 36리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편에는 “소동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 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1. 고지도를 통해서 본 소동라령2. 요해처인 소동라령3. 문헌 기록을 통해서 본 소동라령4. 경계기록을 통해서 본 소동라령5. 하천기록을 통해서 본 소동라령6. 거리기록을 통해서 본 소동라령
      소동라령과 오색령, 옛 한계령(동여도 참조)은 명백하게 다른 영(嶺)이었다. 이는 먼저 〈표 1과 해동지도(海東地圖)에 표기된 고개 명칭을 보면 오색령, 소동라령은 다른 위치의 영으로 함께 표시하고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표 1〉소동라령이 표기된 옛 지도들 제작…
      인제군에서는 지금의 한계령은 소동라령(所冬羅嶺)과 오색령으로 불렀던 것이며, 해동지도에 소동라령을 오색령으로 표기했다'고 하는데〈표 1〉을 보면 오색령, 연수파, 소동라령, 구룡령이 순서대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인제군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일축한다. …
      『여지도서(輿地圖書, 1765년)』의 양양 관애(關阨)편에는 오색령·필여령·소동라령· 조침령·구룡령·형제현·양한치 등의 일곱 항목이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오색령은 설악 남쪽 가지에 접하고 인제와 경계를 이룬다. 필여령은 오색령 남쪽가지에 접하고 있으…
      위 문헌뿐만 아니라 『대동지지(大東地志, 1866년)』 양양 영로조(嶺路條)에도 연수파령·오색령·필여령·박달령·소동라령·구룡령·양한치·소량치 등 모두 여덟 개의 항 목이 열거되어 있다. 여기에서 소동라령(所冬羅嶺)은 “오색령, 필노령, 박달령 모두 서쪽 50리 인제계…
      『신증동국여지승람』 인제현편 산천조와 『연려실기술』별집 16권 총지리, 다산 정약용의 『산수심원기』 등에 보면 “미륵천은 인제현 동쪽 5리에 있다. 미륵수(彌勒之水)의 원류 가 넷인데 하나는 소동라령(所冬羅嶺)에서 나오고, 하나는 소파령(所波嶺)에서 나오고, 하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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