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문헌 속 단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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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목령은 오늘날까지 이용되는 영로(嶺路)이기는 하지만 생계 수단의 대표적 영로였기 때문에 공로(公路) 개념과는 거리관아가 있어 양반이나 문장가가 다니지 않아서 시문(詩 文)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양양부 에서의 거리와 방향만 표기한 글이 보이며 기린과 의 경계였음을 표기한 것이 전부이다.
가. 관동지(關東誌) 제13권
1829∼1831년 사이에 편찬된『관동지』에는‘영로 연수파령(連水坡嶺)은 양양부 서북 쪽 75리에 있으며 오색령·필노령(弼奴嶺)·박달령은 모두 서쪽 50리에 있는 인제계(麟 蹄界)이다. 소동라령(所冬羅嶺)은 서쪽 60리에 있는 몹시 험한 영로로 옛날에 경성으로 통하던 대로로 인제계(麟蹄界)이다. 구룡령(九龍嶺)은 서남쪽 65리에 있으며 강릉계(江陵 界)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 대동지지(大東地志)
1866년 『대동지지』 영로조(嶺路條)에는 연수파령(連水坡嶺:미시령)·오색령(五色嶺)· 필노령·(弼奴嶺)·박달령(朴達嶺)·소동라령(所冬羅嶺)·조침령(曹枕嶺)·구룡령(九龍 嶺)·양한치(兩寒峙)·소량치(所良峙)·형제현(兄弟峴) 등 모두 열개의 고개가 열거되어 있다.‘오색령·필노령·박달령은 부 서쪽 50리로 인제와 경계이다. 소동라령은 부에서 서쪽 60리로 옛날에 서울로 통하는 아주 험한 큰길이 있었는데 인제와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림 3〉『대동지지』의 령(嶺)·치(峙)·현(峴) (자료: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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