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침령 이름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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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로는 문헌 모두‘조침령’이지만 한자 표기는 다양하다. 1691년 양와 이세구 (李世龜)의『양와집(養窩集)』「동유록(東遊錄)」에는 ‘조침령(曹砧嶺)’으로 되어있는데 “한 덩어리의 모탕 같은 영”이란 뜻이다. 즉 조(曹)는 덩어리나 무리를 뜻하며, 침(砧)은 모탕 을 뜻한다. 모탕이란 도끼로 나무를 팰 때 바쳐 놓는 나무인데 하도 도끼를 맞아서 가운 데가 움푹 파인 형태이다.
『여지도서』에는 조침령(阻沉嶺)인데 “지세가 험하며 가라앉은 영”이란 뜻이다. 『증보문 헌비고』는 영조(英祖) 대인 1770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1782년 정조(正祖) 대에 보완·증 보되어 이어오다가, 1908년에 간행되었는데 조침령(阻沈嶺)으로 표기된 침(沉)자는 침(沈)자의 속자(俗字)이다.
〈그림 4〉『증보문헌비고』,『산경표』의 조침령
영조(英祖) 때 신경준이 편찬한 지리서인『산경표』와 1750~1768년 제작된 것으로 추 정되는 「조선지도」에는 조침령(曹枕嶺)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양와집(養窩集)』「동유록 (東遊錄)」의‘조침령(曹砧嶺)’은 침 자가 베게 침(枕)으로 바뀌었다. 베게도 역시 가운데 가 잘록하니 같은 뜻이라 하겠다.
1737~1776년에 제작된「광여도」에는 조침령(阻枕嶺)으로 썼는데“지세가 험하여 자 고 넘는 영”이라는 의미이다. 조침령의 정상이 영의 좌우측(左右側)보다 낮아 말안장 모 양의 안부(鞍部)로 보면 한자(漢字)를 해석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 50,000분의 1 지형도에는 조침령 (鳥砧嶺), 1919년에 편찬된『조선지지자료』는 조침령(鳥沉嶺)으로 각각 다른 한자로 표기 되어 있기는 하지만“새가 넘는 잘록한 영”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림 5〉「조선지도」의 曹枕嶺과「광여도」의 阻枕嶺
백두대간 표지석에는 조침령(鳥寢嶺)으로 표기하였는데“새들도 자고 넘는 고개”로 다 분히 문학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요약해보면 조침령의 한자 표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 曹砧嶺 → 阻沉嶺 → 曹枕嶺 → 阻枕嶺 → 鳥砧嶺 → 鳥沉嶺 → 鳥寢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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