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동라령과 오색역의 변화
페이지 정보
본문
오색역(五色驛)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462년(세조 8) 역제(驛制)를 41 역도(驛道) 543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오색역(五色驛)은 상운도(祥雲道)를 구성하는 하나의 속역이 되었다.
오색역은 1493년(성종 24)에 원암역으로 이설되었기 때문에 영조 때 편찬된『여지도 서(輿地圖書) 1757년∼1765년』강원도 양양부 편에는 오색역에 관한 기록이 없고 소동 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필여령의 남쪽 지맥으로 인제(기린) 경계에 접해있다. 과 거에 서울로 가는 도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강원도 간성군 편 역원(驛院)조에는 ‘원암역은 군 남쪽 60리 에 있으며 대마 2필, 복마 5필, 역리 11명, 노비 48명, 여종은 없다.’라는 기록으로 보 아 성종 연간에 이전이 완료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오색역이 원암역으 로 옮겨 갔어도 오색령은 본래의 기능을 다 하며 남아있었으나 소동라령은 폐지되었다 는 점이다. 즉 오색역과 소동라령은 같은 기능을 수행한 운명 공동체로 동시에 사라 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제45 간성군 산천(山川)조에 ‘미시파령 (彌時坡嶺)은 고을 서남쪽 80리 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 는데 성종(成宗) 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 (所冬羅嶺)이 험하고 좁다 하여 다시 이 길 을 열었다.’역원(驛院)조에는 ‘원암역(元岩 驛) 옛터는 고을 서남쪽 63리에 있었다. 미 시파령(彌時坡嶺)의 길이 열리면서 오색역 (五色驛)을 철거하여 여기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제45 간성군 편 산천조에 미시파령이 왜 소 동라령을 대신하고 있는지와 원암역이 왜 오색역을 대신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준다.
결국 성종 24년에 소동라령(所冬羅嶺)이 역로(驛路)로서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미시파 령(彌時坡嶺) 길이 열렸고 이 길을 유지 보수하던 오색역(五色驛)도 간성 원암역(元岩驛) 으로 이설되면서 이름도 바뀌었다.
〈그림 14〉『신증동국여지승람』간성군
산천조의 미시파령
-
- 이전글
- 1. 오색역의 역할
- 25.02.10
-
- 다음글
- Ⅴ. 맺음말
- 2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