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양양문화원
HOME 문화원소식
  • 자료실
  •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 자료실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에서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의 영(嶺)

    2. 소동라령과 오색역의 변화

    페이지 정보

    조회 25회

    본문

    오색역(五色驛)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462년(세조 8) 역제(驛制)를  41 역도(驛道) 543속역(屬驛) 체제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오색역(五色驛)은 상운도(祥雲道)를 구성하는 하나의 속역이 되었다.

    오색역은  1493년(성종  24)에  원암역으로  이설되었기  때문에  영조  때  편찬된『여지도 서(輿地圖書) 1757년∼1765년』강원도  양양부  편에는  오색역에  관한  기록이  없고  소동 라령은 부 서쪽 60리에 있으며 필여령의 남쪽 지맥으로 인제(기린) 경계에 접해있다. 과 거에 서울로 가는 도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강원도 간성군 편 역원(驛院)조에는 ‘원암역은 군 남쪽 60리 에 있으며 대마 2필, 복마 5필, 역리 11명, 노비 48명, 여종은 없다.’라는 기록으로 보 아 성종 연간에 이전이 완료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오색역이 원암역으 로 옮겨 갔어도 오색령은 본래의 기능을 다 하며  남아있었으나  소동라령은  폐지되었다 는  점이다. 즉  오색역과  소동라령은  같은 기능을  수행한  운명  공동체로  동시에  사라 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제45 간성군 산천(山川)조에 ‘미시파령 (彌時坡嶺)은 고을 서남쪽 80리 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 는데 성종(成宗) 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 (所冬羅嶺)이 험하고 좁다 하여 다시 이 길 을 열었다.’역원(驛院)조에는 ‘원암역(元岩 驛) 옛터는 고을 서남쪽 63리에 있었다. 미 시파령(彌時坡嶺)의 길이 열리면서 오색역 (五色驛)을 철거하여 여기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제45 간성군 편 산천조에 미시파령이 왜 소 동라령을 대신하고 있는지와 원암역이 왜 오색역을 대신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준다.

    결국 성종 24년에 소동라령(所冬羅嶺)이 역로(驛路)로서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미시파 령(彌時坡嶺) 길이 열렸고 이 길을 유지 보수하던 오색역(五色驛)도 간성 원암역(元岩驛) 으로 이설되면서 이름도 바뀌었다.

     

    z7.jpg

    〈그림 14〉『신증동국여지승람』간성군

    산천조의 미시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