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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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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6호

    양양문화36호 목록
      비좌(碑座), 비신(碑身), 개석(蓋石)를 갖추었으며, 비좌는 장방형으로 128cm×70cm×28cm이다. 비좌는 자연석을 바닥에 묻고 보이는 곳만 다듬었다. 비신은 64cm×24cm×157cm로 양면에 명문을 새긴 2면의 비석이다. 전면의 중앙에는 전서(篆書)로『원…
      비좌(碑座), 비신(碑身), 개석(蓋石)을 갖추었으며, 비좌는 장방형으로 125cm×90cm×33cm의 크기로 상면은 각 변의 모를 둥글게 죽여 자연스럽게 경사를 주었다. 비신은 75cm×25cm×190cm로 양면에 명문 을 새긴 2면의 비석이다. 전면 개석 바로 아래…
      6간 규모의 진영각(眞影閣) 안에는 환성당(喚惺堂)을 비롯하여 이 절 과 관련된 17분의 고승 영정이 일제 강점기까지 봉안되어 있었다고 기록 89)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연파당(蓮坡堂) 대사가“표충사선교양종도 총섭(表忠祠禪敎兩宗都摠攝)”을 지냈기 때문에 진영(眞影)…
      1) 동천(東川)과 청심대(淸心臺) 『명주사 사적기』에는 명소로 동천(東川)과 청심대 (淸心臺)가 나온다. 동천에는 운문암(雲門庵)과 문성 폭(聞聲瀑)의 명소가 있고 돌이 잠긴 물이 청주(淸酒) 처럼 맑아서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구경꾼이 아주 많다. 청심대(淸…
      매월당 김시습이 양양의 검달동에 머물 때 명주사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증승(贈僧)”이란 시가 관동일록 에 실려 전한다. 이헌경(李獻慶)은 삼척부사를 지내면서 동해안을 유람하였으며, 허훈(許薰)은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이자 의병장이었다.『어성십경창화시』의 어성…
      지금까지 살펴본 천년고찰 명주사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 이 시기를 거론하 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창건 당시 창건주인 혜명 대사의 발자취를 추적해서 그의 신앙과 사고의 유연 성,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확인했다. 명주사가 위치한 어성전리의…
      문화학교 교실별 수료자 교실명/강사/수료자 한시교실/이종우/12 사물놀이교실/신주명/18 서예교실(한문)/함연호/27 색소폰교실/이명재/27 서예교실(한글)/김광희/29 난타교실/주동진/10 한국화교실/조정승/20 민요교실/이건남/17 수채화교실/…
      한글서예 수상 ◈ 대한민국 운곡서예, 문인화대전 - 최우수상 : 김주희 - 삼 체 상 : 장영랑 - 특 선 : 이기순, 석경숙, 박상혁, 이주옥, 전선주, 전성호 ◈ 양양문화제 휘호대회 - 대 상 : 김주희 - 우 수 상 : 전선…
      1.‘허억봉’은 조선 후기에 퉁소와 대금 연주자로 당시 장악원(지금의 국립국악원) 총책임자인 전악까지 오른 천재 음악가로, 악인들이 악기를 연습할 수 있도록‘금합자보’라는 악보 제작에 참여하였다. 금합자보의 서문에는“허억봉은 대금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사람” 이라고 …
      1월 : 낙산사 관음송(觀音松) 이야기 2월 : 우리 생활과 함께한 소나무 3월 : 「양양팔경가」를 아시나요. 4월 : 3·1만세운동이후 계속된 양양의 청년운동 5월 : 교육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는 내고장 양양 6월 : 양양향교 발전에 기여한 인물 7월 …
      우리 민족이 늘 땔감과 건축재료로 애용하던 소나무의 명칭은 너무도 많다. 그중에서 관음송(觀 音松)이라는 이름은 낙산사와 연관이 깊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제도할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의 근기(根基)에 맞추어 32응신(應身)으로 모습 을 바꾸어 나타나기 때문에 관세음보…
      소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常綠喬木)이다. 우리나라 수종 중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가지며 개체 수도 가장 많다. 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견디며 화강암 지대의 고 산에서도 잘 자란다. 건축재, 가구재, 생활용품, 관재(棺材), 선박 재료로 다양…
      남한에서는 잊혔지만 북한에서는 부르는, 양양사람은 안 부르지만 중국 조선족은 부르는 양양노 래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인민공화국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양양팔경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양양초급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최용대 교장이 작사하고, 음악교사 …
      기미년 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급격히 약해진 상황에서 조직된‘조선민족독립대동단’이 1919년 9월 조직을 재정비하며‘사회주의를 철저히 시행한다’는 노선을 내걸었던 것처럼 1920~1922년 무렵은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혼재되어 일어나…
      옛날부터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교육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본 초석이기 때문에 미래를 향한 긴 안목과 신중한 계획이 요구된다는 말일 것이다. 많은 국가들은 성립과 함께 제도화된 교육기관을 설립 운영하며 인재육성에 힘쓴다. 5월은 교육의 달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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