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학운당태선사정원(鶴雲堂太禪師正原)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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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좌(碑座), 비신(碑身), 개석(蓋石)를 갖추었으며, 비좌는 장방형으로 128cm×70cm×28cm이다. 비좌는 자연석을 바닥에 묻고 보이는 곳만 다듬었다. 비신은 64cm×24cm×157cm로 양면에 명문을 새긴 2면의 비석이다.
전면의 중앙에는 전서(篆書)로『원통암건립대공덕주학운당태선사정원영세불망비(圓通庵建立大功德主 鶴雲堂太禪師正原 永世不忘碑)가 게재 되어있다. 음기(陰記)에『숭정기원후4임신7월일립(崇禎紀元後四壬申七月立)』이 기록되어 있어 1872년 7월에 세운 것을 알수있다. 개석은 옥개형(屋蓋形)으로 106cm×75cm×40cm이다. 비석의 총 높이는 225cm이다.
학운당 태선사(1793년~1869년)는 용악당 대선사의 사승(師僧)으로 원통암이 1781년에 연파 스님에 의해 창 건된 이래로 1849년에 소실되자 곧바로 중건하였으며, 1853년에도 소실되어 중건하였다. 1860년(철종 11년)에 명주사(明珠寺), 원통암(圓通庵), 청련암(靑蓮庵), 운문암(雲門庵), 향로암(香爐庵)이 모두 소실되어 승려들이 흩 어지려 하자 만류하였다. 상감께서 법전 규정으로 얽어매어 넉넉히 구휼 하도록 함으로써 관청의 전대를 쏟아내 고 곳간을 퍼내어 중창하여 1864년 절을 깨끗하게 하였다. 선사께서 1869년 76세에 열반하시었다.
〈그림 23〉인곡당 / 학운당대선사비
■ 학운당태선사정원 영세불망비명 원문 해석
명나라시대 조선국 강원도 양양부 만월산 명주사의 원통암을 건립하신 큰 공덕주이신 학운당 태선사 정원(正原)의 영세불망비이다. 아! 경신(1860)년의 일이었다. 씨실과 날실이 번갈아들듯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원통암이 불타서 없어졌다). 선사께서 스스로 시주하여 거듭 절 을 지으니 크나큰 공덕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길다. 우리에게 도광(道光)으로 전심(傳心)하니 받
들어 모셨다. 그것을 길러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전한 바를 익히게 하시느라 수고로우셨다. 불행 하게도 동치(청나라 목종) 기사(1869)년 4월 초하루에 선사께서 적멸하는 고통을 맞이하였다. 비
록 적멸은 시간의 순리라고는 하지만 추증하신 법호엔 미치진 못하지만 한 조각의 작은 돌에 우
리 문중의 먼 후손까지 미천한 정성을 모아서 선사의 덕행을 기려 사표로 삼으니 이 뜻에 오해 없 길 바란다. 연파후손용악보위서(씀) 숭정기원(1628) 후4 임신(1872)년 칠월 입(세움)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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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有明朝鮮國 江原道 襄陽府 滿月山 明珠寺 圓通庵建立 大功德主 鶴雲堂太禪師正原 永世不忘碑 粤在庚申 遞經滄桑 自爲施主 重開蓮房 巍 巍功德 山高水長 予於道光 奉侍師傳 養之敎之 便同劬勞 不幸同治己巳四月朔日 庵遭寂滅之痛 雖曰時順 追號莫及 一片短碣 師表微忱 吾門末裔 或知此意否 蓮坡後孫聳岳普衛書 崇禎紀元後四壬申七月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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