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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6호

    나) 인곡당선사비명(麟谷堂禪師碑銘)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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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비좌(碑座),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추었으며, 비좌는 장방형으로 128cm×90cm×21cm 이다. 비신 은 73cm×38cm×165cm로 4면 모두에 명문을 새겨져 있다. 비신 전면 위쪽에는 40cm×73cm의 공간에 해서체(楷書體)로『인곡당 선사비명(麟谷堂禪師碑銘)』이라고 위에서 아래로 2자씩 큰 글씨로 음각(陰刻)되어 있다. 비의 전면에는 6.25로 인하여“인곡기당호야(麟谷其堂號也)”중“곡기(谷其)”자(字) 사이에 총알이 충 격하면서 두 글자가 알아볼수 없게 탈락(脫落)되었다.

    비신 우측면에『숭정기원후4임진5월일립(崇禎紀元後四壬辰五月日立)』이 기록되어 있어 1832년 5월에 세운 것을 알수 있다. 이수는 직육면체로 무늬는 뚜렷하지 않으며 135cm×71cm×55cm이며, 특이하게도 이 수 위에 25cm(두께)×75cm×67cm의 평면의 보개(寶蓋)와 보주(寶珠)를 놓았다. 비석의 총 높이는 308cm 이다.

    인곡당 선사(1734년~1816년)는 이름은 뇌학(雷學)이며, 인곡(麟谷)은 그의 당호로 21세에 현산(양양)의 명주사에 들어갔다. 자흠(自欽) 장로에게서 머리를 깍고(祝髮) 월송대사에게 계를 받았으며 설송선사의 법을 이어서 실질적으로 서산대사(휴정)의 정통 법맥을 이었다. 후에 오대산 북대암으로 이주하여  인곡당/부처님 께 군친자사(임금과 왕비, 아버지,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재를 백일동안 올렸다.

    이것으로 재앙을 입은 스님을 구원하고, 무너진 절을 재건하고, 종을 주조하고, 법의(法衣)를 마름질하고,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고, 추위에 떠는 자를 보면 옷을 벗어주는 자비를 베풀었다. 인곡당 선사의 부도는 전 하지 않는다.



    ■ 인곡당 선사 비명 원문 해석

    명나라 시대에 조선국 인곡당 선사의 서문은 쓰고 비를 새기다.

    수록대부 영명위 홍현주( 洪顯周) 짓고 씀(撰幷書)


    선사께서는 옹정 갑인(1734년) 2월 23일에 태어났다. 가경(청나라 연호) 병자(1816년) 11월 20일 83세에 열반하셨다. 이름은 뇌학(雷學)이며, 인곡(麟谷)은 그의 당호이다. 21세에 현산(양양)의 명주사에 들어갔다.

    자흠(自欽) 장로에게서 머리를 깍고(祝髮) 월송대사에게 계를 받았으며 설송선사의 법을 이어서 실질적으 로 서산대사(휴정)의 정통 법맥을 이었다. 후에 오대산 북대암으로 이주하여 부처님께 군친자사(임금과 왕 비, 아버지,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재를 백일동안 올리자 곡식과 재물이 출연(원조)되었다. 이것으로 혹 재앙을 입은 스님이 있으면 구원하고, 불타고 무너진 절을 재건하고, 큰 종을 주조하고, 법의를 마름질하고, 굶주린 자를 보면 밥을 주고, 추위에 떠는 자를 보면 옷을 벗어주었다. 이것이 선사가 베푼 자비의 대강이다.

    무릇 자비란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가르침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며, 등불에서 등불로 전해왔으니 현세 부처님 이전이나 이후나 불교의 제일 덕목이다. 선사의 삼세인 제자인 벽훈이 그 은혜를 잊지 않도록 비석에 새기어 전한다.

    풍산 홍씨 현주가 그것 때문에 글에서 선사의 자비가 서에서부터 동으로 이어지고, 동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니 그 동이 그 서라 나는 감히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숭정기원(1628년)후 4년 임진(1832 년) 5월 일 세움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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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有明朝鮮國麟谷堂禪師碑銘 綏祿大夫 永明尉 洪顯周撰幷書 師誕于雍正甲寅二月二十三日 寂于嘉慶丙子十一月二十日 壽八十三歲 諱雷學 麟谷其堂號也 二十一歲 入峴山之明珠 祝髮於自欽長老 受戒於月松大士 嗣法於雪松禪師 實爲西山正宗也 後移居于五臺山之北臺庵 百日齋 佛 以祝君親者四 出穀捐金 或救被災之僧 或建焚壞之寺 或鑄大鐘 或裁法衣 或見饑者推食 或見寒者而解衣 此師之慈悲大略也 夫慈悲 釋 敎之上乘也 心心相傳 燈燈相照 前佛後佛 其揆一也 師之第三世碧訓 不忘其惠 將傳刻于石 豐山洪顯周 爲之書曰 自西而東耶 自東而西耶 其東其西 吾未敢知之 崇禎紀元後四壬辰五月日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