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양양 신학기(襄陽新學記) / 근재(謹齋) 안축(安軸)
페이지 정보
본문
관동(關東)은 산수가 기이하고 수려한데 양양(襄陽)이 그 속에 들어 있으니, 그 빼어난 정신과 맑은 기운이 반드시 헛되이 축적함이 없다. 백여 년 동안에 기이한 재주와 덕을 품은 선비가 이 고을에 나서 인륜(人倫)을 상서롭게 한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것은 산수의 기운에 징험이 없어서이지, 고을 사람의 성품이 착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이 고을이 옛날부터 변경과 이웃하고 있어서 변란이 여러 번 일어나 학교의 도(道)를 닦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토가 통일이 되어 백성들이 병란을 알지 못하게 되었으 니, 성학(聖學)이 거듭 일어나 자제가 날마다 번성하니, 마땅히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육 하여야 할 것인데, 이 고을에 부임하는 자가 오직 문서나 작성하는 것을 급무로 삼고, 여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산수의 기운이 뭉쳐지고 쌓여서 흩어질 데가 없고, 자제의 성품이 속박을 받아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고을 사람의 불행이 아 니겠는가. 내가 이 고을에 와서 늙은이들에게 들으니, 고을 북쪽에 마을이 있어서 문선 왕동(文宣王洞)이라고 전해지니, 이것은 필시 옛날의 학교터인데 폐해진 지가 오래된 것 이리라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탄식하고, 즉시 고을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곳에 학교를 짓게 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뜻이다.” 하고, 기쁨으로 수고하는 것 도 잊었다. 이에 과거 동기생인 통주(通州) 수령 정랑 진군(陳君)에게 부서(符書)를 보내 어 그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공사가 시작되자 고을 수령 정랑 박군(朴君)이 부임해 왔 는데, 박군은 또한 글하는 선비 상문(相文)의 아들이다. 실상은 그의 힘으로 내 뜻을 이투었으니 이 어찌 고을 사람들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땅 기운은 있어 쇠한 것이 오래되 면 왕성하는 것도 빠르고, 축적된 것이 오래되면 발하는 것도 성하나니, 이제부터 집에 는 재주와 학문이 있는 손자가 있고, 마을에는 어질고 후덕한 풍속이 있을 터이다.
그러고 나면 산수의 수치를 씻을 수 있다는 내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거칠고 소략하여 공사에 빠진 점이 있으니, 바라건대, 뒤에 오는 군자는 한 번 눈여겨볼 것이다.
襄陽新學記 安軸
關之東山水奇秀。而襄陽居其中。其英靈之精。淸淑之氣。必無虛畜。而於百餘年間。未 聞有懷奇才德之士。出是邑而瑞人倫者。此非山水之氣無驗。而邑人之性不善。盖是邑自 古隣於藩境。變亂屢 興。學校之道不修也。今者區宇混一°而民不知兵。聖學重興°子弟 日盛。宜置學校。養育人材。而莅是邑者。惟以簿書爲急。而慮不及焉。故山水之氣。盤 礴欝積而無所散。子弟之性。桎梏襟裾而無以脫。此豈非邑人之不幸歟。予到是邑。聞之 耆舊。邑之北有洞。相傳云文宣王洞。斯必古之學基而廢已久矣。予心竊嘆焉。卽於其 地。命邑人營之。邑人咸喜曰。予之志也。悅以忘勞。於是符下同年友。通州守正郎陳 君。監督其役。工役始興。而邑守正郎朴 君來莅任。朴君亦文儒相文之子也。實用其力。 以 成吾志。此豈非邑人之幸歟。夫地之氣。其衰也久。則其旺也暴。其畜也遠。則其發也 盛。自今家有才學之孫。里有仁厚之俗。然後有以雪山水之恥。而知余言之不失也。然制 定麤踈。事功有闕。望後來君子一寓目焉。
『謹齋集』,襄陽新學記
안축의 양양신학기(新學記)는 주목할 만하다. 강원도 존무사로 와서 양양을 위해 학교 를 세운 것은 양양문화와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양양은 산수가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백여 년 동안 재주와 품위 있는 선비가 나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이것은 양양고을 사람들이 성품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방이라 변란이 자주 일어나 배 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라가 통일되어 백성들이 전란을 몰라 산수의 정기가 서리고 맺혀서 말할 곳이 없고 자제들의 묻혀 드러낼 수 없으니 이것은 양양고을의 불 행으로 양양을 위해 학교를 짓도록 명하였다.
이에 존무사는 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쓰고자 했다. 고을 어른들에게 물으니 문선왕 동(文宣王洞)이라는 아마도 신라시대 학교터가 남아 있어 이곳에 학교를 짓게 하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존무사 안축의 생각은 학교가 인재를 양성하면 집에는 재주와 학문 있는 손자가 있고, 마을에는 어질고 후한 풍속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안축의 학교 창건과 도움으로 오늘날 양양의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고, 고을마다 미풍양속이 전해오고 있다.
-
- 이전글
- 16. 낙산 시운을 따라서(次洛山詩韻) / 근재(謹齋) 안축(安軸)
- 25.03.02
-
- 다음글
- 18. 관동별곡(關東別曲) / 근재(謹齋) 안축(安軸)
- 2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