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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6. 낙산 시운을 따라서(次洛山詩韻) / 근재(謹齋) 안축(安軸)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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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부처님은 두루 통하는 경지에 계셔 太聖圓通境

    바닷가 봉우리에 계셨다고 하네 曾聞海上峰

    은혜는 감로주와 같이 윤택하고 恩同甘露潤

    향은 임금께서 내리신 조서 있네 香有紫泥封

    사람에 따라 그 모습 늘 나타난다지만 隨類身常現

    얽히고 혼란한 눈으로 만나지 못해 纏迷眼不逢

    부처님 진신이다 아니다 말하지 말게 莫論眞與假

    다만 자비로운 모습에 절하면 되네 但自禮慈容

     

    『謹齋集』

     

    안축(충렬왕 13년, 1287년〜충목왕 4년, 1348년)의 휘(諱)는 축이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사헌규정(司 憲糾正)을 지내고 충숙왕 11년(1324년) 원(元)의 제과(制科)에도 급제해 개주판관(蓋州判 官)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고려에 돌아와 성균학정(成均學正)을 거쳐 충혜 왕(忠惠王) 때 강원도 존무사(存撫使)로 파견되었다. 이때 충군애민(忠軍愛民)의 뜻이 담 긴 문집 『關東瓦注| 를 남겼다. 시를 통해 그 시가 칭찬하는 것과 꾸짖는 것을 살펴서 권면과 경계를 삼고자 함이었다.

    충숙왕 복위1년(1332년) 판전교(判典校)■지전법사(知典法事) 재직 시 파면 당했다가 전 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되었으나 내시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충혜왕이 복위하자 다시 전법판서•감찰대부(監察大夫)에 등용되었으며, 충목왕 즉위년(1344년)에 지밀직사사 (知密直司事)•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내고 판정치도감사(判整治都監事)가 되어 양전 (量田) 행정에 참여했다. 민지(閩漬)가 지은 『編年綱目』을 이제현(李齊賢) 등과 다시 편 찬했고 충렬왕충선왕충숙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경기체가인 「關東别曲」•「竹溪 別曲」을 지었고, 문집은 『근재집』이 있다. 흥녕군(興寧君)에 봉해졌고, 순흥의 소수서 원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관음보살의 상주처인 낙산사는 불교의 성지이고, 깨달음의 공간이다. 고승인 의상대사 가 낙산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바닷가에 절을 건립하였고, 고려 공민왕과 신돈이 낙산사를 찾아 풍년의 고마움을 감사로 예배드렸다.

    많은 스님과 지식인들이 낙산을 찾아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 싶었지만 속세의 번 뇌와 욕망 때문에 친견하지 못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느냐 못하느냐 보다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예불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귀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