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양주를 지나면서(過襄州)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페이지 정보
본문
천리 머나먼 관동을 오마로 가면서
아름다운 곳 만날 때 마다 머물렀네
양주 객사를 갑자기 지나쳤던 것은
바빠서였지 명예를 좋아한 것 아니었소
千里關東五馬行
毎逢佳處便留情
襄州客舍瞥然過
只爲忽忙非好名
『雙梅堂先生集』
이첨(충목왕 1년, 1345〜태종 5년, 1405년)의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중숙(中叔), 호 는 쌍매당(雙梅堂)이다. 10여세에 율재(栗齋)로부터 글과 학문을 배웠고, 21세 때에 國子 監試에 2등 진사로 합격하였다. 24세(공민왕 17년, 1368년)때 4월에 고려 말 정치적 중심 인 목은 이색에 의해 禮部試 에 장원으로 발탁되었다. 이색(李穡)의 문인이며, 공민왕 14 년(1365년) 감시(監試)에 합격한 뒤 1368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이 되었다. 공민왕 20년, 13기년) 신돈의 미움을 사 강원도 통천군수인 지통주사로 좌천되었다, 우왕 1년(1375년) 이인임•지윤을 탄핵한 죄로 10년 동안 귀양살이했다.
조선이 건국된 뒤인 태조 7년(1398) 이조전서에 기용되어 정종 2년(1400년) 첨서삼군부 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事)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2년 뒤 지의정부사(知議政 府事)에 올라 하륜과 함께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태종 3년(1403년)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다. 종이를 의인화한 가전 〈楮生傳〉이 있고, 저서로 『쌍매당집』이 있다.
이첨은 문장이 뛰어났고, 강개하고 곧은 성격으로 유배생활을 많이 하였다. 이 시는 남쪽 지방으로 유배를 오가면 쓴 시로 보인다. 머나먼 관동지방을 오가며 아름다운 양양을 지날 때마다 머물렀다. 어느 날 양양의 객사를 그냥 지나친 것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 라 공무로 바빠서였다고 양양에 관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
- 이전글
- 23. 양양에 도착하여 통천태수에게 부치며 (到襄陽寄通州太守) / 근재(謹齋) 안축(安軸)
- 25.03.02
-
- 다음글
- 25. 상운정에 걸린 가정의 시운에 차운하며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 2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