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낙산 행 소재 법석 소 (洛山寺行消災法席疏) /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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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합니다. 부처님께서 나라를 보호하는 자비(慈悲)가 어찌 다함이 있으리오. 소자가 재앙을 만나 두려워서 어찌 할 줄을 모르나이다. 이에 간절히 귀의(歸依)하와 큰 이익을 받기를 바랍니다.
생각하옵건대 이 조그마한 몸이 외람되게 큰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비록 윗자리에 있 어 능히 밝지는 못하오나 그래도 임금의 업무가 쉽지 않은 줄은 압니다. 사냥이나 놀이 를 줄이고 음악이나 여색의 즐김을 조심하며, 두려운 것은 백성이니 썩은 줄로 말을 다 루 듯하고, 임금의 자리를 편안히 여김이 없이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합니다. 그래도 혹 정치의 잘못됨이 있었을 것이며, 형벌의 지나침이 없었겠습니까.
이를 상제(上帝)께서 검열하시매 마땅히 하늘의 꾸지람이 많습니다. 비가 많이 와 산이 무너져서 호구(戸口)의 손실을 가져 왔고,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아서 곡식의 피해도 많 았습니다. 불상(佛像)에 땀 흐르는 비상한 일이 있었으며 금성(金星)이 낮에 나타났습니 다 괴변이 거듭 이르니, 근심이 이에 청정한 곳을 가려서 재앙 없애는 기도의 자리를 베푸나이다. 자비하신 법신(法身)은 30가지의 묘한 상(相)을 갖추셨고, 길상(吉祥)의 신비 한 주문(呪)은 8만 가지의 재앙을 녹인다 합니다. 환란이 나기 전에 막자면, 오직 가피 (加被)에 의지할 뿐이옵니다.
엎드려 원하몹건대, 주시(周詩)의 순수한 복을 받아서, 더욱 수하며 어질어지고 기범(箕 範)의 나쁜 징조는 없어져 길이 편안하여서, 백성이 안락하고 물질이 풍부하고 병란이 끝나고 시절이 태평합니다.
洛山寺行消災法䟽
偉覺皇護國之慈。曷有其極。余小子遇災而懼。罔知所爲。玆切依歸。兾蒙饒益。念惟眇 質。叨據丕基。雖未能居上克明。亦少知爲君不易。庶省遊畋之樂。思戒聲色之娛。可畏 非民。凜如御以朽索。無安厥位。恒若臨於深淵。然有敷政之失宜。豈無播刑之或濫。斯 乃帝心之簡。宴宜天譴之多。積雨山崩。以致戸口之損。暴風木拔。而多禾稼之傷。且佛 汗之非常。又金星之現晝。變異荐至。虞憂實深。故當食而忘夕食。或已卧而復起。爰擇淸 淨之地。式陳禬 禳之筵。慈悲法身。實爲三十妙相。吉祥神呪。能消八萬種災。庶防患於 未然。惟仰憑於加彼。伏願茂擁周詩之純嘏。俾壽而臧。悉蠲箕範之咎徵。其寧惟永。民 安物阜°兵戢時康。
『東文選』卷之一百十三,疏
변계량(공민왕 18년, 1369〜세종 12년, 1430년)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거경(巨 卿), 호는 춘정(春亭)이다. 이색(李穡)•권근(權近)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네 살 에 고시의 대구를 외우고 여섯 살에 글을 지었다. 우왕 8년(1382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듬해 생원시에도 급제하였으며, 세종 2년(1420년) 집현전이 설치된 뒤 대제학이 되었 고, 1426년에 우군도총제부판사(右軍都摠制府判事)가 되었다. 특히 문장에 뛰어나 거의 20년간 대제학을 맡아 외교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대제학으로서 귀신과 부처를 섬겨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여 주위로부터 사기를 탐내고, 죽기를 두려워 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거창의 병암서원(屏巖書院)에 제향 되었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저서 로는 『춘정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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