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9월에 왕이 낙산사(洛山寺)에 행차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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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왕이 낙산사(洛山寺)에 행차하니 낙산사는 신돈의 원찰(願刹)이다. 측근의 신하가 다투어 왕에게 아뢰기를, “금년에는 대풍이 들었습니다.” 하니, 왕이 부처 앞에 꿇어 앉 아 말하기를, “제가 나라를 다스린 지 15년이 되었으나 수재·한재가 많았는데, 금년의 풍작은 실로 첨의(僉議)가 음양을 고르게 다스린 데 연유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신돈을 공경하여 첨의라 일컫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신돈은 낙산사의 관음보살 (觀音菩薩)이 영이하다 하므로 오일악(吳一鶚)을 시켜 비밀리에 저의 축원문(祝願文)을 쓰 게 했는데, 그 원장에, “제자(弟子 신돈 자신을 말함)의 분신 모니노(牟尼奴)가 복이 많고 장수하여 나라에 머물러 살도록 해주십시오.” 하였다. 모니노는 신돈의 비첩 반야(般若) 소생이니 우(禍)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처음에 신돈이 사비(私婢) 반야를 맞아 들여 임신 시켜서, 반승(伴僧) 능우(能祐)에게 부탁하여 능우의 어머니 집에 가서 아이를 낳게 했다.
7일 만에 반야는 돌아오고 능우의 어미가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만 1년이 되지 않아 서 아이가 죽었다. 능우의 어미는 신돈에게 꾸지람을 받을까 두려워서 다른 사람의 아이 를 훔쳐와서 다른 곳에 두고, 신돈에게 청하기를,'아이가 병이 있으므로 성 밖으로 옮겨 서 기르려고 하는데 어떻겠습니까.'하니, 신돈이 이를 허락하였다.
1년이 되어 신돈이 아이를 데려다가 집에서 길렀으나, 반야도 제 아이가 아닌 줄은 알 지 못하였다. 왕이 항상 대 이을 아들을 구하여 양자를 세우려고 했는데, 어느 날 미행 하여 신돈의 집에 가니, 신돈이 그 아이를 가리키면서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양자를 삼 아 뒤를 잇게 하소서.' 라고 하였다. 왕이 곁으로 보고 웃으면서 답하지 않았어도 오히려 내심 이를 허락하였다." 한다.
九月,幸洛山寺,辛旽願刹也,左右爭言於王日,今歲大稔,王,跪于佛曰,自不穀莅 國,十有五年,水旱爲灾,今歲之稔,實由僉議之燮理也,王敬旽,稱僉議而不名,旽, 以 洛山觀音靈異,令吳一鶚, 密書願狀曰, 願令弟子分身牟尼奴,福壽住國,牟尼奴,旽, 婢 妾般若所生,是爲禍,或云,初,旽,納私婢般若,有娠,屬伴僧能祐,使就產於其母家, 七日而般若還,能祐母,收而養之,未期年,其兒死能祐,恐被旽讓,竊取他人兒,置諸 他所,請於盹曰, 兒有疾,移養城外, 何如,旽許之,比及一年,旽取養于家,般若,亦未 知非其兒也,王,常求嗣,謀所以立後, 一日, 微行至盹第,旽,指其兒曰, 願殿下,爲養 子以立後,王睨而笑之不答
『高麗史節要』卷之二十八,恭愍王三,丙午十五年元至正二十六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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