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동헌(東軒) / 목계 (木溪) 강혼(姜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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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 와 고인(故人)의 현명함을 추억하는데
청봉에 잔설이 처마 비추네
맹호연(孟浩然)은 공연히 나귀 등에서 시구를 읊조렸고
산공(山公)은 오히려 습지(習池)의 자리를 비웠네
마침 밝은 달을 만나 누대가 고요하니
젊은 여자의 고운 태도가 필요 없네
이번 걸음에 정과 흥이 박했다고 이르지 말라
마땅히 훗날에 다시 신선을 찾을 것이오
襄陽來憶故人賢
殘雪晴峰暎畫軒
孟浩空吟驢背句
山公猶欠習池筵
正逢明月樓臺靜
不用靑娥意態妍
莫道此行情興薄
會須他日更尋仙
『新增東國輿地勝覽』卷之四十四,江原道襄陽都護府
강혼(세조 10년, 1464년〜중종 14년, 1519)의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 계(木溪)이다. 증조부는 영의정 맹경(孟卿)으로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성종 17년 (I486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연산군 4년(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곤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얼마 뒤 풀려나서 뛰어난 문장으로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도승지가 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병충분의정 국공신(秉忠奮義靖國功臣) 3등으로 진천군(晉川君)에 봉해졌다. 그 뒤 대제학•공조판서•우 찬성판충추부사를 거쳤다. 시문에 뛰어나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저서에 『목계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동헌은 지방관아에서 감사, 병사, 수사 또는 그 밖의 수령들이 공무를 처리하는 곳을 말한다. 강혼과 김종직은 문인으로 시문에 뛰어났다. 공무로 양양에 와서 동헌에 머물며 쓴 작품으로 보인다. 양양에서 고인의 현명함을 생각하는데 청봉보의 남은 눈이 처마를 비친다. 맹호연처럼 양양에서 나귀 등에서 시구를 읊조리고, 연회에서 취하도록 즐기지 않지만 누대에서 밝은 달을 만나니 고요하고 자신을 찾을 수 있어 맹호연처럼 연회의 기생도 필요 없다. 이번 여정에 정과 흥을 즐기지 않았지만 다시 이곳을 찾아 신선의 세 계를 찾아 즐기고 싶다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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