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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54. 산중의 답답함을 유공회에게 보여주며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페이지 정보

    조회 21회

    본문

    산중의 답답함을 유공회에게 보여주며 

    (山中悶甚示柳公薈)

     

    객관에서 무료하여 술에 취해보니

    예쁜 꽃 한 송이가 좋은 향길 풍기누나 

    사내들 곳곳마다 풍류 벌어지니

    날마다 고당(이름난 기생)과 채색 구름 꿈꾸네

     

    客館無聊酒半醺 

    好花日朶吐奇芬 

    男兒到處風流在 

    日日高唐夢綵雲

     

    서쪽으로 장안을 바라보니 갈 길은 멀다마는 

    양양 고을 기생들이 특별히 아름답네 

    내일도 점점 복잡해도 마음 아니 조이는데 

    버들가지 이제부터 긴 가지에 얽히었어라

     

    長安西望道途遙 

    花語襄陽特地嬌 

    明日漸多心不迫 

    柳枝從此綰長條

     

    양양은 예부터 풍류가 심하였는데 

    지금까지 숙부님의 정사가 가장 우수하네 

    행장차려 서쪽으로 웃고 가지 말고 

    맑은 술로 국화 필 때 한 잔 하세

     

    襄陽自古甚風流 

    叔父于今政最優 

    且莫俶裝西笑去 

    淸樽相對菊花秋

     

    『梅月堂集』 卷之三

     

    김시습(세종 17년, 1435년~성종 24년, 1493년)의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열경(悅卿)이고,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이고, 법호는 설잠 (雪岑)이다. 선조는 신라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김시습은 5세에 학문과 문장으로 신동으로 알려져 당시 정승 허조와 세종대왕에게 문장능력을 인정받고 미래를 약속 받았다. 하지만 단종 폐위 사실을 듣고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고 방랑을 시작하였다. 단종에게 절의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생육신의 한사 람으로 최초의 한문소설인 『金鰲新話』를 지었다. 조선조 최고의 문인이지만 불우한 현 실에서 기인이고, 미치광이로 대접받으면서도 자신의 지조를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자신의 가문과 철학, 불교관, 인생관 등 자신을 인정하고 위로하였던 양양부사 유자한 에게 서신으로 예의를 갖추었고, 서신의 내용이 김시습과 당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유자한(柳自漢.?-?)의 본관은 진주이다. 세조 5년(1459년) 평양별시문과(平壤別試文科)에 1등으로 급제하여 1464년 경기도경차관(京畿道敬差官)이 되었다. 이듬해 중시문과(重試 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1466년 지평을 지냈다. 성종 6년(1475년) 홍문관부교리가 되고, 1478년 예문관응교•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지낸 뒤 1482년 행사간(行司諫)을 지냈다.

    성종 16년(I486년) 양양부사로 재임하면서 의창(義倉)의 환자[還上]에 따른 폐단을 상소하여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연산군 10년(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 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양양부사로 있으면서 양양의 백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유부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유배지에서 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단종에게 절의를 지키기 위해 방랑생활을 하였던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과 서로 위로하며 가까이 지냈다.

    김시습에 관한 가문과 어린 시절, 그리고 많은 일화들이 양양부사 유자한의 서신에 나 타나 있다. 유부사는 양양의 여인을 김시습에게 소개하여 편안한 가정을 꾸밀 것을 부탁 하기도 하였다. 김시습은 평생 전국을 방랑하였지만 유부사 때문인지 몰라도 문집 속에 양양에 관한 기록과 설화가 많이 전해오고 있다. 오세암의 전설을 보면, 매월당 김시습 이 이 절에서 주로 은거하여 오세암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이 시는 부사 유자한의 접대로 양양 객관에서 머물며 술이 취해 예쁜 꽃송이를 보고 지었다. 양양의 전통적인 풍류와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