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낙산사에서 저절로 흥이 나서 성사에게 지어주며 (洛山漫興贈成師) /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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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해가 새벽 바다 위에 솟아오르니
붉은 아침 노을은 산을 비추네
창문 열어 해를 맞이하니
홀연히 구름이 높이 떠 있네
햇살이 구름 틈으로 들어오니
밝은 햇살 낙산사를 비추네
옛 벗을 정중히 맞아주니
바다는 푸르름으로 넘쳐 흐르네
성사(成師)께서 이 해를 보시고
영원히 내 마음을 보게 해 주시네
白日曉生海
丹霞朝映山
開窓迓羲馭
忽在重雲端
外物幸投隙
光明猶一圓
寅賓古蘭若
海色靑漫漫
師乎觀此日
永作吾心看
『漁村集』
심언광(성종 18년, 1487년~중종 35년, 1540년)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사형(士 형), 호는 어촌(漁村)이다. 예조좌랑 준(濬)의 아들이며, 찬성 언경(彦慶)의 동생이다. 중종 2년(1507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151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에 보임되었다.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면서 문명을 날려, 지평•정언•장려•홍문관 교리•집의 등을 지냈다.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 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이 되어서는 형 언경과 함께 김안로 (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해하자, 비로소 후회하게 된다. 특히 김안로가 그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여 이를 질책하 자, 관계가 악화되었다. 1536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안로 의 비행을 비판하자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다. 시(詩)•서(書)•화(畫)에 능하였다. 시호 는 문공(文恭)이고 문집으로는 어촌집이 있다. 이 작품들은『동관록』(東關錄)에 수록되 어 있다 동관록은 1530년 강원도 관찰사 재임기간의 작품들이다
심언광이 강원도관찰사로서 공무로 낙산사에 도착하여 절로 흥이나 성사에게 지어준 시로 보인다. 일출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새벽녘 아침 해가 바다 위로 솟아오르자 붉은 노을이 산을 비춘다. 이에 창을 열고 해를 맞이하니 홀연히 구름 이 높이 떠 있、어 구름 틈으로 밝은 햇살이 비춘다. 아침 해가 옛벗을 반갑고 정중하게 맞아주는데 바다는 푸르름으로 넘쳐흐르며 반겨준다. 성사께서 이 해를 보시고 영원히 내 마음을 보게 주어 고맙다는 심회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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