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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96. 영랑호제영(永郎湖題詠) / 구사맹 (具思孟)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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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백경(경은 넓이의 단위)의 맑은 호수 거울같이 고요해

    조각배에 흥취 싣고 달밤에 뱃놀이 하네 

    당시 놀던 자취 사라졌건만

    어찌 구구하게 영랑호라 이름하였는가

     

    百頃淸湖鏡平面

    扁舟載興泛空明 

    當時只擬遊踪秘 

    饒舌何人强揭名


    구사맹(중종 26년, 1531년~선조 37년, 1604년)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경시(景時), 호는 팔곡(八谷)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순(淳)이며, 딸이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유희춘 (柳希春),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명종 13년(1558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사 간•정언 등을 거쳤다. 1563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왔다. 이조좌랑이조정랑을 거쳐 선조 2년(1569년) 황해도관찰사가 되고, 이어 동부승지로 있을 때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76년 다시 기용되어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 다. 좌부승지로 있다가 다시 대간의 탄핵으로 남양부사로 나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 어나자 왕자를 호종하여 의주로 갔고,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왕자와 후궁을 따라 성천 에 피난했다. 좌참찬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이 되었으나, 1602년 아들 굉(宏)이 유배 되자 사직했다. 청렴결백하여 권세가들과의 접촉을 피하였고,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다섯째 딸은 인헌왕후(仁獻王后)가 되었고, 그는 능안부원군(綾安府院君)에 추봉 되었다. 문집에 『八谷集』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水城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