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상운정 (祥雲亭) / 율곡(栗谷) 이이(李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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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풍악산과 이별하고
秋風別楓嶽
해질 무렵 상운정에 도착했네 斜日到祥雲
모래 위에 수많은 바위가 열을 지어있고 沙上千岩列
소나무 사이 길 하니 분명하네 松間一路分
요란한 우렛소리 바다 물결 일으켜 殷雷波捲海
선 근 수레와 같이 기러기가 무리 지었네 疎篆雁成群
여물 먹는 말 재촉하여 길 떠나니 示未馬催程發
앞산에는 저녁노을이 지네 前山晚靄曛
『峴山誌』
이이(1536~1584년)의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 (愚齋)이다. 아명은 현룡(見龍),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강평공(康平公) 1536년 강원도 강 릉 죽헌동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에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 때의 이름은'현룡(見龍)'이라 지었다가 뒤에 이(珥)로 바꾸었다. 이이는 3세 때에 이미 글을 깨 우쳤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글과 그림을 흉내 낼 정도로 놀라운 천재였다. 1548년, 이 이는 13세 때 진사 초시에 장원 급제하여 시험관은 물론 부모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이는 불교 서적을 읽고 유교와 색다른 학문에 흥미를 느껴 3년 상이 끝난 명종 9년 (1554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연구하였다. 하지만 불교가 유교에 미치지 못함을 깨 닫고 1년 만에 금강산에서 내려왔다.
20세에 금강산에서 내려와 다시 성리학에 탐독하며 유교의 진리를 통해 현실 문제를 타 개하겠다는 다짐을 설파하며 『自警文』을 집필하였다.
명종 13년(1558년) 23살의 이이는 당시 대학자인 58세의 퇴계 이황을 찾아가서 만났다. 이이는 그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이황과 학문의 여러 가지 문제와 사상을 논하고 시를 짓고 토론하였고, 이황은 그의 재능에 크게 감탄하였다. 13세 이후로 29세까지 생원시와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으로 급제하였는데, 이로써 그는 과거에 총 9번 장원 급제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까지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 지나간다고 하 였다.
명종 19년(1564년) 이이는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곧 호조좌랑이 되었다가 예조좌랑으로 전임하여 국가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였다.
선조 1년(1568년) 천추사가 명나라로 갈 때 서장관으로 동행한 뒤, 1569년 홍문관교리를 지냈으며, 그해 음력 9월에는 송강 정철과 함께 『東湖問答』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선 조에게 올렸다.
1571년 조정의 부름을 받고 청주목사로 임명되어 내려간 그는 서후향약을 정하고 백성 들의 자치 생활을 권장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해 그는 학문 연구를 위하여 신변 을 핑계로 사직하고 파주의 율곡촌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썼다.
선조 7년(1574년)에는 또 조정의 요구로 황해도 감사로 약 반년 재직하였다. 그 후에도 자주 조정과 고향을 왕복하면서 대사간•대사헌•호조판서•대제학•이조판서•우찬성•병조판 서 등을 역임하였다.
1582년 이조판서와 형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여진족의 반란을 진압하였고, 대제학을 역임하고 우찬성에 올랐다.
선조 16년(1583년) 병조판서에 임명되고 당색으로는 서인에 속했는데, 이 때문에 동인 의 집중 탄핵을 받아 이이는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경장(更張)하고 싶어하던 구국의 뜻 을 풀지 못한 채 병을 얻어 49세를 일기로 새벽에 사망하였다. 이이가 1년간의 입산 경 력이 있음을 놓고, 불교와 관계했다 하여 뒷날의 동인 당쟁파들은 온갖 트집을 잡아 비 방을 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성공(文成公)이다.
그의 저작인 『東湖問答』, 『聖學輯要』, 『人心道心說』, 『時務六條疏』 등은 모두 임금의 도리와 시무를 논한 명저로 그의 정치에 대한 태도는 유학자의 이상인 요순시대 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일반 민중의 계몽을 위하여 『西原鄕約』,『海州鄕藥』,『社倉契約束』,『同居戒辭』, 『學敎模範』,『海州隱屏精舍學規』,『約束』,『文獻書院學規』 등의 규례를 많이 만들 었다. 그의 제자로는 사계 김장생, 중봉 조헌, 수몽 정엽, 묵재 이귀 등의 학자들이 율곡 의 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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