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유금강일록(遊金剛日錄-와유록) 이명후(李明厚) / 한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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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에 명산이 셋 있는데, 영남의 지리산(智異山)과 관서의 묘향산(妙香山)과 동해 의 금강산(金剛山)이 그것이다 세 산 가운데 금강이 가장 아름답다. 중국 사람들도 조 선국에 태어나 한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니, 이로써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우리 동방에서만 최고인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경치임을 알 수 있다. 나도 한번 유람하여 평생의 소원을 풀어 보려 했으나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이에 형부 좌시랑(刑部左侍郎)으로 있다가 외직을 힘써 구해 숭정(崇禎) 무진년(1628년, 인조6년)에 강릉부사(江陵府使)가 되어 정월에 부임했다. 공사(公私)의 일을 정리하지 못 했는데 4월에야 대강 정돈이 되었다. 나 자신을 생각해 보니 나이가 육순에 가까워, 지 금 풍악산을 유람하지 않으면 뒷날에 후회할까 두려워, 드디어 유람하기로 결정하고 두 아들 현기(顯基)와 원기(元基)를 데리고 떠나기로 했다.
4월 12일 계묘일. 말을 타고 연곡(連谷)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동산(洞山)에 이르렀는데 권칭(權稱) 정기평(鄭基平)이 술을 가지고 찾아왔다.
13일 갑진일. 일찍 동산을 출발해 정오에 상운(祥雲)의 유객당(留客堂)에서 점심을 먹었 다. 날이 저물 무렵 낙산사(洛山寺)에 이르렀다. 나의 벗인 양양 부사(襄陽府使) 지세(持 世) 조위한(趙偉韓)이 이화정(梨花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악을 베풀어 주었다. 비가 내려 잔치를 거두고 빈일료(賓日寮)에 들어가 즐겁게 놀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파했다.
절은 신라 때 신승(神僧)인 의상(義相)이 창건했다고 한다. 후전(後殿)에 관음상을 모셨 는데, 만든 모양이 매우 정묘하다. 선당(禪堂)의 벽 위에는 안견(安堅)이 그린 산수도가 있다.
절은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사람들은 중국 금산(金山)의 감로사(甘露 寺)와 비교하는데 어느 절이 더 뛰어난지는 알 수 없다. 절 동쪽에는 의상대가 있고 대 북쪽에는 관음굴(觀音窟)이 있다. 세속에 전하기로는 익조(翼祖) 가 아들 얻기를 빌던 곳 이라고 한다.
14일 을사일. 아침 일찍 낙산사를 출발해 청초호(靑草湖)를 거쳐 영랑호(永郎湖)를 지났 다. 영랑호에서 잠시 쉬었는데 매우 맑고 경치가 아름답다. 청간정(淸澗亭)에서 점심을 먹고 만경대(萬景臺)에 올랐다. 이 또한 팔경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직접 보니 들은 것 과는 같지 않다.
청간정에서 20여 리를 가니 뚝 끊어진 산이 바다를 옆에 두고 우뚝 서 있다. 아전에게 물어 보니 능파대(凌波臺)라고 한다. 수레를 돌려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쪽으로는 큰 바다를 마주 하고 있다. 바닷가 경치는 대략 비슷하나, 서쪽의 경치는 좌우에 호수가 있어 파도가 포구에 드나든다. 논을 새로 갈아서 허연 물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작은 다리가 시내 위에 걸쳐 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어촌 마을에서 저녁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겹겹으로 이어진 산과 고개는 구름 가에 아름답게 서 있고, 저녁놀은 비추었다 사라졌 다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치다. 내가 '앞쪽 경치가 뒤쪽 경치만 못하다'고 하자, 따르 는 이들도 모두 그렇다고 한다.
10여 리를 더 가니 선유담(仙遊潭)이 나왔다. 못은 별로 크지 않은데 앞산이 에워싸고 있어서 큰 산이 물 가운데 거꾸로 들어간다. 못 좌우에는 큰 소나무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루었고, 앞뒤는 맑고 시원하다. 비록 영랑호만 못하지만 그윽하고 깊숙한 맛은 마음에 들었다. 논하는 이들도 어느 것이 더 뛰어난지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저녁에 간성(杆城)에 이르렀다. 고을 수령은 나의 벗 중정(仲靜) 김상복(金尙宓)인데, 차 원(差員)으로 서울에 가고 없었다. 그와 더불어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 한번 만 나는 것도 명수(命數)가 있어야 하는 것임을 알겠다. 이에 마음이 아쉬웠는데, 아랫사람 들마저 매우 박하게 대하니 더욱 언챦았다. 달빛을 맞으며 누대에 올라 유량(庾亮)이 쓴 남쪽 누대란 구절을 읊었다. 천박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했는데도 그가 달을 즐기는 마 음이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15일 병오일. 새벽에 가서 대궐에서 행하는 예를 보았다. 일찍 간성을 출발해 20여 리 를 가서 화진포(花津浦)에 이르렀다.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니 바닥이 은은하 게 보였다. (물속에) 집[屋宇]이 있다는 말은 불경스러워 믿을 수 없다. 대개 모래톱의 물 이 번갈아 나오고 맑고 넓으며 깊숙한 곳을 경포(鏡浦)에 비교하는데, 경포가 아래에 있 으나 경포라는 이름은 도리어 그 위에 있으니 왜 그런가?
대의 좌우에는 좋은 논과 밭이 많이 있다. 왼쪽에는 군사(軍士) 이경순(李敬淳)의 집이 있다. 경순은 문장과 시를 잘했는데 늙어서 죽은 뒤 아들이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집은 이사를 갔으나 묘는 아직도 남아 있다. 오른쪽에는 군사 이연(李連)의 집이 있다. 모두 돈을 주고 사서 살면서, 그 곁에 있는 마전(馬田)을 소작으로 부친다고 한다. 벼슬을 버 리고 살고 싶어도 누가 팔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찼다.
오시(午時) 가 가까워서야 별산(別山)에 이르렀다. 말을 쉬게 하고 여물을 먹였다. 무송 도(茂松島)를 지나서 명파역(明波驛)에서 잠시 쉬었다. 송도(松島)를 지나 대강역(大江驛) 에서 점심을 먹었다. 무송과 송도의 승경은 대략 만경대와 다름이 없다.
어제 저녁에 박시창(朴時昌)이, 간성 사람들이 대접을 박하게 했다고 화를 내면서 팔까 지 휘두르며,
“언제쯤 고성(高城)에 도착할까? 고성은 틀림없이 대강(大江)에서 성대하게 차려 놓고 기다릴거야.”라고 했는데, 어찌 이처럼 조용한가.
대강에 이르렀으나 역참에서 기다리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승려가 미리 재계하고 기다리는데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라고 하자 모두 배를 잡고 크게 웃는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밥을 지었다 밥을 먹고 나니 짙은 안개가 하늘에 비끼고 가는 비 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강을 출발해 감호(鑑湖)로 가는 길에 전 도사(都事) 정전 (鄭沺)의 정자에 올랐다. 네모진 호수에 바위 봉우리가 아름다워 마음에 들었다. 주인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벼슬을 구해 조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아, 이런 강호의 경치를 두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려고 벼슬 얻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바닷길을 따라 10여 리를 가니 바위봉우리가 나왔다. 바로 현종암(懸鍾巖)이다. 바위에 구멍이 움푹 파여 집과 비슷해서 비와 눈을 피할 수 있겠다. 세상에 전하기로는, '오백 나한이 바다에서 나와 석실에 살다가 좌해(左海)로 배를 타고 떠났다. 그러므로 위에는 현종암이 있고 바닷가에는 부주암(覆舟巖)이 있고, 서쪽에는 계주암(繫舟巖)과 곡포암(穀 包巖)이 있다. 모두 신성(神聖)한 옛날의 자취다.'라고 한다. 그 말이 불경스러워 모두 기 록할 수 없다.
드디어 산에서 내려와 남강(南江)에 이르렀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 뱃사람이 배를 대고 강북 언덕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명멸(明滅)하는 동안 강을 건넜다.
태수(太守)인 명로(明老) 허계(許啓)는 오래된 벗이다. 언덕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오래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가 오자 정성스럽게 위로해 준다. 언덕에 올라 마주 보니 매우 기 뻤다. 서서 술 한 잔을 마시고는 나를 이끌어 해산정(海山亭)에 올랐다. 이윽고 몇 잔을 마시고는 술자리를 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따라온 이들은 모두 이슬을 맞으면서 잔다. 매우 불쌍하여 정자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6일 정미일. 일찍 일어나 주변을 두루 구경했다. 해산의 경치를 평가하려 하는데, 바다 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아침 늦게야 비로소 개었다. 동쪽으로 해문(海門)을 바라보니, 바위가 바다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마치 거센 파도에 버티고 서 있는 지주(砥柱) 같다.
남쪽에는 바위산 세 봉우리가 눈앞에 줄지어 서 있다. 서남쪽에는 금옥(金玉)이 서 있 는데, 푸른색이 눈에 가득하다. 동서쪽에는 양귀암(兩龜巖)이 있다. 큰 강이 마치 하얗게 바랜 듯 너른 들 가운데를 에워싸며 흘러간다. 평하는 이들이 죽서루(竹西樓)보다 낫다 고 하는데 팔경에는 끼이지 못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명로와 더불어 고산대(高山臺)에 올랐다. 달을 기다려 강에 배를 띄우려고 하는데,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이경(二更)이 되어서도 달빛을 보지 못하 고 몇 잔의 술을 마시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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