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낙산사제영 (洛山寺題詠) / 손재(損齋) 조재호(趙議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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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제마을은 바다 위에 뜬 구름 옆에 쑥 나오고
굽어보니 창해는 매우 묘묘하네
산줄기 하나는 설악을 따르고
하늘 열고 땅을 갈라 금강에 견주었네
문 앞에 가까운 어룡굴
다락 밖에는 일월광을 태평스럽게 대하네
발밑 찬 기운은 만리에 통하고
배는 가벼워 붕새와 더불어 날고자 한다
松提突風海雲傍
俯視滄溟極渺茫
山出一支從雪嶽
天開別地較金剛
門前近接魚龍窟
樓外平臨日月光
脚下冷氣通萬里
舟輕歎與大鵬翔
『峴山誌』
조재호(숙종 28년, 1702년~영조 38년, 1762년)의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경대(景大), 호는 손재(損齋)이다. 동생이 진종(眞宗:영조의 아들인 효장세자)의 비 효순왕후(孝純王 后)이다. 영조 15년(1739년) 우의정 송인명(宋寅明)의 추천으로 세자시강원에 등용되어 서연(書筵)에 참여했다. 1744년 홍산현감(鴻山縣監)으로 재직 중 춘당대문과에 급제했고, 승지로 특진한 뒤 지돈녕부사•경상도관찰사•이조판서•우빈객을 역임했다. 1754년 우의정 이 되었고, 다음해 세자책봉 문제를 정리한 〈천의소감 闡義昭鑑〉편찬의 도제조(都提調) 를 겸했다. 1762년 장헌세자의 폐위문제가 대두되자, 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역모 혐의가 씌워져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1775년 신원되었다. 저서로 『손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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