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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6호

    3) 원통암(圓通庵) 창건으로 인한 관음신앙과 미타신앙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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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1781년  신축(辛丑)에  명주사  승려이 신 연파당(蓮坡堂) 대선사에 의해 원통 암(圓通庵)이  창건되어  관음상(觀音像) 을 조성, 봉안하였다. 이로 인하여 관음 신앙이  미타신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졌을 것이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은 '자신을 부 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는  공통적 인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원효(元曉) 대사49)는 이를 이용하여‘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을  만들어  전 파하여 오늘날까지도 사용된다.

    어성전리 마을에서 명주사로 향하는

    <그림 12〉명주사 입구 나무아미타불 석재기둥과 명주사 표지판

    갈림길 입구에는 사각형의 화강석 석재(石材) 기둥(거칠게 다듬었으며 길이가 230cm, 폭36cm임.)이 세워 져 있는데 정면에는 명주사입구(明珠寺入口) 좌측에는‘북방불기2968년3월립’(1941년 3월에 세움)이, 우측 에는‘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음각하고는 각자(刻字)에 붉은색 주사(朱砂)가 칠해져 있다.

    1906년(丙午 1월)에 회산거사(晦山居士) 정현동(鄭顯同)이 쓴『원통암중수기(圓通庵重修記)』를 보면 원통 암을 대대적으로 중수하면서 명주사에 걸려 있던‘추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에 대하여 … 중략) 거기 에 머무는 나그네에게 권하니 완당 김정희가“무량수각”현판을 써서 그곳을 찬미하고 송축하는 도다.50)“라 는 기록으로 보아 명주사의 모든 사무를 원통암으로 옮기면서 주불도 아미타불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명주사는 오늘날까지도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면서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편액을 1980년 이후 극락전(極樂殿)으로 고쳤다.

    특히, 우리 지역은 의상(義相)대사께서 세운 낙산사가 있어 이미 7세기 후반부터 관음신앙이 사회 상층부 에서부터 기층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것은 미타정토(彌陀淨土)를 기반으로 한 불교 대 중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51)

    의상이 저술했다는『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에 ”관세음보살님이 지극한 정성으로 아미타부처님 을 이마 위에 이고 받들 듯이 저도 또한 관세음보살님을 높이 모시고 받드옵니다.“52)라는 구절과 같이 관음신앙은 미타 신앙과 연결되어 있다.

    정토 신앙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깨달음이 너무나 원대한 곳에 있어 자신의 힘이 부족한 것에 대한 반 성과 죽음의 문제가 연결되어 대중화되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서 관음은 현실적인 소망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정토에서 왕생하고자 하는 수행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명주사의 이러한 신앙은 호월(皓月)스님, 연파(蓮坡)스님, 인곡(麟谷)스님, 학운(鶴雲)스님, 용악(聳嶽)스님 으로 이어져 선(禪)과 교(敎)는 물론 외전(外典)53)까지 두루 섭렵하여 18세기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고 하겠 다. 특히 연파당(蓮坡堂) 대선사께서는“널리 알고 통하도록 호월당, 풍악법사, 송암대사, 설파대사 같은 분 에게 내·외의 여러 가르침을 받게 되니, 곧 학문에 빼어나 진실로 화엄학이 깊어져서 인간 세상을 건너는 뗏목이 되었다. 어찌 단지 잎의 존재만 보리요, 나〔蓮坡〕는 장차 천하를 크고 넓게 관하리라”54)고 하시고는 우리나라 불교의 최고 승직인 표충사선교양종도총섭(表忠祠禪敎兩宗都摠攝)과 석왕사도원장(釋王寺都院長) 을 엮임하셨다.




    029-1.jpg

    <그림 12〉명주사 입구 나무아미타불 석재기둥과 명주사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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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신라의 승려. 같은 시기에 활동한 고승 의상과 쌍벽을 이루는 고대 한국 불교계의 고승으로 신라십성(新羅十聖) 중 한 명이다.‘모든 건 자기 마음에 달렸다(一切唯心造)고 가르쳤다.’

    50) 1906년(광무 10) 圓通庵重修記(원통암중수기) 錫其勉之哉 阮書無量壽閣 其善頌者乎 51)『의상화엄사상연구』정병삼 1998년

    52) 以爲本師 如彼菩薩 頂戴彌陀 我亦頂戴 觀音大聖

    53) 유교는 몸을 닦는 가르침이므로 외전(外典)이라고 한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가르침이므로 내전(內典)이라고 한다.

    54) 有明朝鮮國蓮坡堂大禪師碑銘幷書 : 博通內外諸敎 如皓月堂 楓嶽法師 松巖大師 雪坡大師 卽其秀也 允邃於華嚴 旣而嘆曰 牖世津筏 豈必 只在見葉 吾將觀天下之大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