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양양문화원
HOME 문화원소식
  • 자료실
  • 양양문화36호
  • 자료실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문화36호

    나. 원통암중건기(圓通庵重建記)

    페이지 정보

    조회 45회

    본문

    원통암 중건기는 원통암을 상량한 다음에 준공하고 1864년 가을에 화은호경이 기록한 것을 번역하였다. 원통암의 중건을 이루어 냈다, 가람을 완성하니 소옹 화은자가 그것을 기록한다. 원통암은 명주사 동남쪽

    모퉁이에 있으며, 명주사는 오대산 동쪽 기슭에 있다. 오대산은 양양부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깍 아 지른 기암으로 둘러있고 끝을 알 수 없는 바위가 켜켜이 솟아 하늘에 꽂혀 푸른 동해를 찍어누르니 그 웅 장함과 신령스러움이 매우 깊어 금강산과 더불어 자웅을 겨룬다.

    철종 4년 계축(1853) 봄에 암자가 불에 재가되어 누추하게 꾸며서 겨우 덮고, 눕고, 앉았다. 그 후 7년 넘 어 경신(1860)년 봄에 또 불이나 절에 살던 승려들이 어찌할 겨를도 없이 삽시간에 불이 번져 겨우 몸만 벗 어나고 의발(옷과 가제도구)은 모두 탔다. 장차 암자의 식솔이 다 흩어지려 하자 암자 주지인 학운선사가 대 중을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타일렀다.

    달이 차면 비워야 하는 것은 변함없는 이치로 모아 두었던 사재를 쏟아부어 구휼과 암자 중건을 동시에 이 루기 위해 중건을 계획한바 날을 점쳐 불사를 시작하였다.

    대중이 이미 팔을 걷어 붓치고 달려들어서 사람을 자유로이 부릴 수 있으니 일이 모두 다 진행되었다. 장 인이 돌을 옮기고 도끼로 풍속(風俗)을 이루니 범궁(절)이 날개를 펴고 훨훨 날더니 다음 해 가을 선사(학운) 의 고족(우수한) 제자 용악보위공이 그 스승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나를 찾아와 말하였다. 암자가 두 번이나 화재를 당했으나 나의 스승께서 온 힘을 다해 복원하셨으니 비록 공훈이 있다 하여도 비교할 바가 아니며 하 물며 이 암자에 대하여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옳지 못한 일이다.

    나(용악)의 오대조 스승인 연파 대화상께서 건륭(46년), 신축(1781)년 처음으로 창건하시고 지금 나(용악) 의 스승(학운)이 또 중건하니 남다른 재앙을 입은 우리 절은 예전에 창건하고 후에 북원하였으니, 기이한 인 연을 대비한 듯하다. 이것은 어찌 우연이 아니겠는가? 옛날의 기록과 상량문이 세찬 불꽃 가운데 함께 들어 갔다면 지금의 기록은 없었다.

    거둘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중국 고대에 있었던 희황상인(羲皇上人)의 그림과 같이 아득해진다. 화재의 두 려움이 지난 후에야 현실이 보였고, 또한 오히려 현실에 이르니 옛것이 자세히 보였다. 화은자가 나(용악)의 선사를 위하여 그것을 기록하는 것을 내게 허락한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용악보위공께서는 원통의 세계 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냐며 말했다. 능엄 25성인이 모두 원통〔육근(六根)이 서로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에 들어갔지만, 오직 관세음보살만이 모든 성인을 홀로 뛰어넘어 육근이‘맑고 텅 비어 결함 없이 밝으며 움직 임 없는 것이 큰 거울 같은 깨끗한 지혜’에서 온 세상을 원만히 밝혔다. 이에 관음대사께서 원통을 얻은 까 닭에 원만이 통하도록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다.

    용악보위공께서는 원통암을 다시 일으켜 종을 울리고 암자의 문을 열었다. 바다와 산악에 의지하여 정화 된 사찰은 수승(殊勝)하다. 그윽한 경치에 구름이 샘물 위로 떠다니니 선미(善美)하다. 가파른 바위에서 떨어 지는 폭포소리를 들으니 문득 탐욕 없는 이근으로 골짜기를 무심히 관하다 갑자기‘현묘한 우주 이치’에 들 어간다. 이 모든 것은 선사가 마음을 평온하고 순화롭게 함으로 원통의 묘한 경지(거울)에 이른 것이다. 이미 탐심을 내려놓고 이근으로 희이(현묘한 우주 이치)에 들어갔다.

    곧 원통의 묘한 문이 이곳에서 활짝 열리니 능각 소각이 다 합해져 묘공에 이른다. 무릇 이와 같이 저(관 음) 대사와 더불어 서로 버티며 사양하지 않으니 이에 25성인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 바로 이때 외물(外物) 을 접촉하여 식별되는 경계에서 원통의 묘문(열반경지)에 들어가지 않은 선사는 하나도 없었다. 이문으로 들 어가 보면 보고, 듣고, 깨달아 안다는 것이 공화(번뇌 망상)가 아닌 것이 없다. 삼계 세간(세상)이 오히려 큰 꿈과 같아 이제 꿈속의 몸으로서 꿈꾸던 암자를 일으켰다. 이에 용악보위공께서 기록하기를 청하여 내가 기 술하니 이 또한 모두가 꿈이다. 이런 의미를 돌아보고 선사께 고하자 곧바로 선사가 필요함을 수긍하여 나에 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때는 금상원년(고종, 태황제) 갑자(1864)년 한가을 화은호경 기록하다.59)


    -----------------

    59) 圓通庵重建記 : 圓通庵得重建 而蘭若成 笑翁華隱子記之 曰庵在明珠寺巽隅 寺在五臺山東麓 山在襄陽府南若干里 磅蹲環拱 縹緲層擡 聳揷 太淸 頫壓滄海 其雄大靈邃 與金剛相甲乙 哲宗四年癸丑春 庵火揆灰結茅 才庇跌坐 越七年庚申春又火 居僧蒼黃奔突 僅以身免 衣鉢盡燬 將魚鳥散 庵主鶴雲禪師 撫衆慰諭 曰丕泰盈虛 理之常也 於是傾出私儲 兼得恤助 圖所以重建 占星經始 衆旣肘趍 事皆頣指 匠石運斤成風 梵宮翬飛鳥革 翌年秋 師之高足聳岳衛公 德其師而訪余 曰庵經二火 而我師竭力旋復 雖有勳而不競 事不可以無記 況是庵也 我玄翁師蓮坡 大和尙 始創於乾隆辛丑 而今我師又重建 異哉我家 前創後復 如有待於奇緣 此豈非偶也 舊記及樑錄 俱入烈焰中 若今無記 則其所無徵 杳 如羲皇畵前事 恐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子爲我師記之 余曰諾 又曰公 不聞圓通界乎 楞嚴二十五聖 皆入圓通 而唯觀音大士 獨超諸聖 六 湛鏡空 十方圓明 此大士所以得 圓通而示圓通也 公庵再興 鳴鐘開堂 淨刹據海嶽之勝 幽景擅雲泉之媺 巖瀑聞聲 忽淸 耳根 洞觀無心 俄入 希夷 斯皆禪師之平常 圓通妙鏡也 旣淸耳根 入希夷 則圓通妙門 當處洞開 能覺所覺 皆合妙空 夫如是 則與彼大士 不讓頡頏 而二十五聖 亦在中也 正當此時 觸境遇物 無一不禪師之圓通妙門 入此門 則見聞覺知 無非空花 三界世間 猶如大夢 今以夢身搆夢庵 而公之請記 余之 述記 亦皆夢也 以此意 回告禪師 則禪師必肯許夫余矣 時 今上元年甲子仲秋 華隱護敬謹 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