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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3. 관고(官誥) / 동산수(東山叟) 최자(崔滋)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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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문하. 법은 스스로 서지 못하고 말로 인하여 세움으로 진승(眞乘)은 진언(眞言)을 총섭 (總攝)하고, 덕은 일정한 스승이 없고 착한 것을 주장하는 것이 스승이 되므로, 큰 호(號) 는 마땅히 크게 착한 이에게 가하여야 한다.

    낙산사(洛山寺) 주지(住持) 선사(禪師) 조유(祖猷)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삼매(三昧)의 힘으로써 일체의 마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진양공(晉陽公)이 수십 일 동안 병을 앓고 있 을 적에, 천리 밖의 낙가산(洛伽山)으로부터 갑자기 와서 용주(龍呪)를 외웠는데, 바리때 밑에 막 금강저(金剛杵)의 소리를 드날리자, 술잔 가운데에 비친 뱀이 곧 각궁(角弓)의 그림자인 것을 깨달았다. 이에 상쾌하고 화평한 기운이 빨리 돌아와 우뚝하게 태산이 다 시 편안한 것 같았다. 나만이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 뻐하였다. 이에 봉조(鳳詔)를 반포하여 특별히 큰 칭호를 준다.

    아, 우리 여래(如來)를 제호(醍醐)라 이르나니 이것이 최상의 법장(法藏)이 되는 것인데, 어찌 선왕(先王)이 용상(龍象)에게 품계를 내릴 적에 선사(禪師)에게 큰 대(大)자를 더하 지 않았던가. 작위는 반드시 사람을 기다리므로 등급을 초월하는 상을 내리노니, 마땅히 특별히 보살펴주는 뜻을 체득하여 더욱 국가의 복리를 증진하는데 힘써야 한다.

     

    官誥

    門下。法不自立因言而立。眞乘揔攝於眞言。德無常師主善爲師。大號宜加於大善。洛山 寺住持禪師祖猷。以頌持三昧力。能攝伏一切魔。當晉陽公累旬而未寧。自洛伽山千里而 忽至。呪龍鉢下。才揚金杵之音。映蛇盃中。旋覺角弓之影。灑然和氣 之遄集。屹若泰山 之復安。非朕獨嘉。擧國咸喜。玆 頒鳳詔。特賜鴻稱。於戲 我如來謂之醍醐。是爲最勝 之法藏。何先王秩其龍象。例不加大於禪師。位必待人。賞以不次。當體殊尤之眷注。益 勤福利於邦家云云。

    『東文選』卷之二十七,制誥

     

    최자(명종18년, 1108년~원종1년, 1108년)의 본관은 해주이고 초명은 종유(宗裕)•안(安),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叟)이다. 문헌공 충(冲)의 후손이고, 부친은 우복야 민 (敏)으로 강종 1년(1212년) 과거에 급제하고 상주사로尙州司錄)을 거쳐 국자감학유(國子 監學諭)가 되었다. 10년간 중용되지 못하다가 일찍이 지어놓은 시「虞美人草歌」와 「水精盃」가 이규보(李奎報)의 눈에 띄어 최이(崔怡)에게 문한(文翰)을 담당할 사람으로 추 천하였다. 추천받은 사람들 간의 시험에서 5번 장원을 하고, 5번 차석을 했으며, 고종 때 정언을 거쳐 상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전중소감(殿中少監)•보문각대제(寶文閣待 制), 충청도•전라도 안찰사, 국자감대사성•지어사대사•상서우복야•한림학사•추밀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신이면서도 무인정권기에 대표적 문벌로서 활동했다. 저서로 『崔文忠公家 集』•『補閑妬』 이 있다. 『三韓詩龜鑑』에 시 1편이, 『東文選』에 부(賦) 2편, 시 10편 등이 수록되어 있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