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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27. 태평루제영 (太平樓題詠) / 가정(稼亭) 이곡(李殼)

    페이지 정보

    조회 29회

    본문

    파면시켰던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은 전에 없던 일로 

    부서진 기와에 천경년(天慶年)이 적혀 있네

    동우(棟宇)는 벌써 전성할 때와 같고

    민가에는 다시 태평한 연월(煙月)이 있네

    처마에 가득한 가을 기운은 산이 좌석을 둘렀고

    언덕을 격한 물결 소리는 파도가 하늘에 닿은 듯하네

    새로 온 어진 태수에게 말하노니

    은지(隱之)야, 탐천(貪泉)을 마신들 무엇이 해로우리

     

    李君起廢事超前 

    敗瓦書存天慶年 

    棟宇巳同全盛日 

    閭闊還有太平煙 

    滿簷秋氣山圍坐 

    隔岸濤聲浪樓天 

    奇語新除賢太守

    隱之何害酌貪泉

     

    이 다락 풍경이 눈앞에 넉넉한데

    오가며 등림한 지도 또 일 년이네

    주렴에는 차갑게 은하 이슬이 젖고

    거문고 복판엔 따뜻하게 옥전(玉田) 연기가 나네

    한가하니 병 속 세월을 즐길 만하고

    막힘은 독 속 천지가 싫다

    여러분의 빙설(氷雪) 같은 시구에 화답 하고파도

    짧은 두레박 줄로 깊은 샘물 길으니 부끄럽네


    此樓風景僅瞻前

    來往登臨又一年 

    簾額冷霑銀漢露 

    琴心暖起王田煙 

    淸閑可喜壺中日

    阨塞還嫌瓮裏天 

    欲和諸公氷雪句 

    羞將短綆汲深泉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之四十四,江原道襄陽都護府

     

    이곡(충렬왕 24년, 1298년~충정왕 3년, 1351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중부(仲 父), 호는 가정(稼亭)이다. 아들이 색(穡)이고, 백이정(白願正)•정몽주•우탁(禹倬)과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꼽힌다. 1317년 거자과(擧子科)에 합격,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332 년 원나라에서 정동성 향시(鄕試)에 수석,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했고, 한림국사원 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이 되어 원나라 문사들과 사귀었다. 1334년 귀국하여 가선대부 시전의부령직보문각(嘉善大夫試典儀副令直寶文閣)을 제수받았다. 이듬해 다시 원나라에 가서 정동행중서성좌우사원외랑(彳正東行中書省左右司員外郎) 등의 벼슬을 거쳤고, 고려에 서의 처녀 징발을 중지하도록 건의했다. 문장이 뛰어나 원나라에서도 존경받았다. 가전 체 작품〈죽부인전 竹夫人傳〉과 100여 편의 시가 『東文選』에 전하며 저서로 『가정 집』4책 20권이 전한다. 한산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의 단산서원(丹山書院)에 배향 되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태평루는 객관 남쪽에 있었다. 16간으로 원나라 인종연우 2년(1315)에 창건 되었고, 경 인년에 중창되었다. 다시 은총을 입어 나랏일을 하며 양양에 들려 태평루에서 이 시를 지었다. 동우는 전성시처럼 강건하다. 백성들은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다. 晋나라 吳隱之 가 貪泉이란 시가 있다

     

    옛 사람이 이 샘물을 말하기를 古人云此水

    한번 마시면 천금을 생각나게 한다고 하네 一歃懷千金

    백이와 숙제에게 이 샘물을 마시게 한다 해도 試使夷齊飮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 終當不易心

     

    이 샘물을 마시면 욕심쟁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진 태수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심 회를 표현하였다.

    두 번째 시는 태평루의 풍경이 넉넉하여 오가며 찾은 지가 2년이나 되었다. 이곳에서 한가롭게 풍류를 즐기며 눈같이 맑고 시원한 시로 화답하고 싶지만 자신의 문장이 부족 함을 부끄러워하며 심회를 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