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태평루(太平樓-객관 남쪽에 있다) / 원재(圓齋) 정추(鄭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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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식히는 누각은 연우년(延祐年-원 인종연호) 전에 완성하여
누 이름 지은 사람은 갑진년에 왔네
처마에 벌려선 늙은 나무 외로운 달이 걸렸고
언덕을 이웃한 수양버들 반쯤 연기에 늘어졌네
홀(笏)을 잡고 높게 읊조려 서늘한 기운을 맞이하고
술잔을 들고 흘겨보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네
거문고 줄을 섬섬옥수로 칠 것 없고
비온 뒤 숲 속의 시냇물 소리가 목 메인 듯 들려오네
消署樓成延祐前
命名人到甲辰年
排簷老樹孤輪月
傍岸垂楊半縷煙
柱笏高吟迎爽氣
擧觴白眼望靑天
朱絃不用纖纖弄
過雨林間咽澗泉
『新增東國輿地勝覽』卷之四十四,江原道襄陽都護府
정추(1333~ 1382년)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공권(公權), 호는 원재(圓齋)이다. 공 민왕 2년(1353년)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을 지공거(知貢擧)로 한 과거에 급제한 이후 예문검열(藝文檢閱) 및 여러 관직을 거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올랐다. 공민왕 15년 (1366년)에 인척인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辛旽)의 죄를 탄핵하다가 도리어 큰 고초 를 당하였다. 신돈은 반대파 숙청을 위한 무고의 기회로 삼으려 거짓 자백을 강요했으나 정추는 폭압적 문초에도 굴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색(李穡)의 구원으로 죽음을 면하고 동래현령(東萊縣令)으로 좌천되었다가 공민왕 20년(1371년) 신돈이 제거된 후 다시 좌간 의대부(左諫議大夫)로 발탁되었다. 이어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거쳐 정당문학(政 堂文學)에 임명되었다가 고려 멸망 10년 전인 1382년에 병사하였다.
태평루에서 머물며 누각의 창건연대와 누각에서 바라본 풍경을 표현하였다. 오래 된 나 무들 사이로 외로운 달이 보이고, 한수의 수양버들은 연기와 함께 늘어져있다. 시원한 날씨에 큰 소리로 시를 읊으며 술잔을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이 때 비온 뒤 숲 속의 시 냇물 소리가 목메어 들려온다는 표현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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