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와유헌(臥遊軒)-양양의 관아 / 송재(松齋) 이우(李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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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공(嶺空) 서쪽서 당기고 바다는 앞에서 당기는데
누대에서 노래 부르고 피리 불며 노년을 보내네
섣달 거센 바람 오봉의 눈 탐하는데
밥 짓는 새벽 온 마을 연기 가득하네
높은 파도 북쪽에서 밀려와 지축을 흔들고
장기(나쁜 기운) 품은 구름 동쪽에서 걷혀 달 하늘에 떴네
낙산의 절은 임금이 다녀가신 곳
온 골짜기 솔바람소리 샘물소리 낸다네
嶺空於西海控前
樓臺歌吹度長年
臘深風嗇五峯雪
炊曉村橫百里烟
鯨浪北來坤動軸
瘴雲東捲月生處
洛山紺宇宸遊處
萬壑松濤殷石泉
『江原道誌』
이우(예종 1년(1469년)~중종 12년(1517년)의 본관은 진보(眞寶)이고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조카가 이황(李滉)이다. 연산군 4년(1498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기용된 뒤 검열대교•봉교를 지냈다. 1506년 동부승지로 있을 때 중 종반정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 다. 그 뒤 우부승지.진주목사•동지중추부사•호조참판•오위도총부부총관•형조참판.강원도관 찰사 등을 지냈다. 1514년에 중종반정 당시 윤장(尹璋)•조계형(宵繼衡) 등과 함께 입직승 지(入直承旨)로서 공을 세운 것처럼 가장했다는 김은(金銀)의 상소로 녹권(祿券)을 빼앗 기고 삭직되었다. 이듬해 안동부사로 기용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 관동지방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가 『關東行錄』에 전한다. 예안 청계서원(淸溪書院) 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송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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