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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03. 낙산사(洛山寺) / 사류재(四留齋) 이정암(李廷馣)

    페이지 정보

    조회 21회

    본문

    어쩌다 꿈같이 낙산사에서 신선처럼 노니 

    하늘 끝에 은은히 저녁 종소리 들리네 

    늦가을 여기 온 것은 나는 한하네 

    달빛아래 배꽃을 볼 수 없기에

     

    一夢仙遊豈化城 

    雲端隱隱暮鐘聲 

    我行恨値秋風晚 

    不見梨花夜月明

     

    풍경소리 맑게 들리는 등불 아래 

    고요히 참선하는 스님

    세상에 괴로움 어느 날 그칠 것인가 

    파돗소리 여음은 근심만 더하네 

    시름 걱정 아직 끊이지 않고

    갈 길은 멀어서 힘에 겹구나

    동창을 활 짝 열고 두 눈을 들어 보니 

    보일 듯한 삼신산 아득히 바라보네

     

    一聲淸磬一龕燈 

    坐對跏趺人定僧 

    自笑勞生何日己 

    海濤聲裏旅愁增 

    多病相如味解消 

    不堪鞍馬去經遙 

    東窓拓盡擡隻眼 

    隱釣三山八望過

     

    『金剛山詩』集下篇

     

    이정암(중종 36년, 1541년~선조 33년, 1600년)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퇴우당(退憂堂),월당(月塘)이다. 동생은 이조참판 정형(廷馨)이다. 명 종 16년(156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기용된 후 승정원주서공조좌랑•예조좌 랑.전라도도사.경기도도사 등을 역임했다. 1578년 양주목사로 나갔다. 1587년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이어 대사간승지•이조참의를 역임했다. 1593년 병조참판전주부윤•전라도관찰 사 등을 역임했고, 황해도관찰사 겸 도순찰사가 되었다. 난이 끝난 후 은퇴하여 풍덕(豊 德)에 거처하다가 죽었다. 저서로는『喪禮抄』•『 讀易攻』•『倭變錄』•『西征日錄』• 『사류재집』 등이 있다. 월천부원군(月川府院君)으로 추봉되고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연안 현충사(顯忠祠)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낙산사는 예부터 배꽃이 아름답다 특히, 달빛 아래 배꽃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 름답다. 꿈에 그리던 낙산사를 찾아 신선처럼 즐기는데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하늘가에서 들려오지만 달빛 아래 배꽃을 볼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두 번째 수에서는 풍경소리 맑게 들리는 등불아래 고요히 참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세상의 괴로움을 언제 다 할지 근심하는데 파돗소리는 더 근심하게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수는 깨달음을 위해 절을 찾았지만 시름과 걱정을 버리지 못하는데 갈 길이 멀어 더 힘겹다. 이에 동창을 열자 삼신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