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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蘘陽의 漢詩

    106. 낙산사차판상운(洛山寺次板上韻) / 지퇴당(知退堂) 이정형(李廷馨)

    페이지 정보

    조회 21회

    본문

    풍경소리 맑게 들리는 등불 밑에 

    고요히 참선하는 승려 있구나 

    인생의 괴로움 어느 날 그칠 것인가 

    파돗소리 여운은 여수만 더하는구나

     

    시름걱정 아직도 끊이지 않고

    갈 길 멀어서 힘에 겹구나

    동창을 활짝 열어 두 눈을 들어

    보일듯한 삼신산을 아득히 바라본다오


    一聲淸磬一籠燈 

    坐待伽趺入定僧 

    自笑勞生何日記 

    海濤聲裏旅愁增

     

    多病相如未解消 

    不堪鞍馬去程遙 

    東窓拓盡擡雙眼 

    隱約三山八望迢

     

    『金剛山詩集』下篇

     

    이정형(명종 4년, 1549년~선조 40년, 1607년)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동각(東閣)이다. 선조 1년(156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扈從), 개성부유수로 특진되었다. 이때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 고 개성이 함락되자 형 정암(廷馣)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을 격파했다. 1594년 고급사 (告急使)로 요동(遼東)에 다녀왔다. 이후 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비변사당상•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602년 예조참판이 되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6년 삼척부 사로 부임, 이듬해 병으로 죽었다. 평소 이황(李滉)을 흠모하여 호를 지퇴당(知退堂)이라 지을 정도였던 그는 남인인 이원익•이수광(李睟光) 등과 가까이 지내며 학문을 연마했다. 저서로는 『東閣雜記』•『黃兎記事』•『壽春雜記』•『지퇴당집』 등이 있다. 춘천 문암서

    원(文巖書院)에 제향 되었다.

    이 작품은 1606년 삼척부사로 부임하여 낙산을 찾아 쓴 것으로 보인다. 낙산사의 맑은 풍경소리 은은히 들리는데 고요히 등불아래 참선하며 깨달음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속세의 인간으로 파돗소리의 시름만 더 한 다. 갈 길은 멀어 시름은 더하는데 동창을 열고 멀리 삼신산을 바라보면 속세의 인연에 서 벗어나 신선이 되고 싶은 심회를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