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정시회 행장 - 상촌(象村) 신흠(申欽) /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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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명종 21년, 1566년~인조 6년, 1628년)의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경숙(敬叔), 호 는 상촌(象村)•현헌(玄軒)•방옹(放翁)이다.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월 상계택'(月象谿澤)이라 통칭되는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7세 때 부모를 잃고 장서가로 유명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경서와 제자백가를 두 루 공부했으며 음양학•잡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개방적인 학문태도와 다원적 가치관을 지녀, 당시 지식인들이 주자학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단으로 공격받던 양명 학의 실천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1585년 진사시•생원시에 합격하고, 15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9년 춘추관원에 뽑히면서 사헌부감찰병조좌랑 등을 지 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철의 종사관으로 있었으며, 그 공로로 지평 (持平)으로 승진했다. 이후 선조에게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아 대명(對明)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참여했다. 1599년 큰아들 익성(翊聖)이 선조 의 딸인 정숙옹주의 부마가 되었고, 1601년 『춘추제씨전』을 엮은 공으로 가선대부(嘉 善大夫)가 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예조판서가 되었 다. 1616년 인목대비의 폐비사건으로 춘천에 유배되었다가 1621년 사면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로 피난했으며, 같은 해 9월 영의 정에 올랐다가 죽었다. 1651년 인조묘정에 배향되었고, 강원도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 院)에 제향 되었다. 문집으로『상촌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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