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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蘘陽의 漢詩

    190. 영혈사에 스님을 찾아감(靈穴尋僧) / 이해조

    페이지 정보

    조회 19회

    본문

    영혈사는 설악산에 있다. 신라 승려 원효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옛날에는 고승이 많았다고 한다. 

    靈穴寺在雪嶽新羅僧元曉所創建舊多高僧云


    능엄경을 스스로 읽지 못하니

    모든 번뇌 누구와 이야기 할까

    잠시 떠나 벗과 흥겨운 주연을 즐기는데

    불문(佛門)의 벗이 찾아오네

    벼슬 생활이 그 얼마인가

    부부의 정을 애석해 하지 마라

    백련사에 들어가려고 하니

    이 포도주는 어찌 하나


    楞嚴不自讀 

    誰與講空有 

    暫謝習池伴 

    來訪空門友 

    已許玉帶鎭 

    莫惜䲶鴦綉

    欲入白蓮社 

    奈此蒲萄酒

     

    『鳴巖集』

     

    이해조(현종 1년, 1660년)〜숙종 37년, 1711년)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자동(子 東), 호는 명암(鳴巖)이다. 우의정 정구(廷龜)의 증손이고 대제학 일상(一相)의 아들이다. 숙종 15년(1689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벼슬을 단념하였다가 1694년 왕후가 복위된 후 빙고별검(氷庫別檢)이 되고, 1702년 전주 판관(全州判官)으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속종 35년(1709년) 2월 양양부사로 부임하였다. 정언(正言)•부교리圓校理)•집의(執義)•대 제학을 역임하고 전라도 관찰사를 엮임 하였다. 조부 때부터 3대가 모두 대제학(大提學) 을 지냈고, 시문에 능하여 김창흡(金昌翕)으로부터 천재라는 격찬을 받았으며 저서 『鳴巖集』이 있다.


    다음 시는 양양부사 이해조(1660~1711년)가 조선조 최고인 문인으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를 즐겼던 당대의 스승인 김창흡(1653~1722년)선생께 드리자 이에 같은 제목으로 화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