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낙산사제영 (洛山寺題詠) /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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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한쪽에 층진 봉우리 꽂혔는데
소나무, 계수나무, 우거져 자줏빛 녹색 이네
난간을 바라보니 규벽 움직이는데
누전의 상방에서 또 만나 뵈네
滄溟一面揷層峰
松桂陰陰紫翠濃
試看欄頭奎璧動
上房樓殿亦遭逢
『江原道誌』
채팽윤(현종 10년, 1669년~영조 7년, 1731년)의 본관은 평강(平康)이고 자는 중기(仲耆), 호는 희암(希菴)•은와(恩窩)이다. 숙종 13년(1687년) 진사가 되고, 1689년 증광문과에 갑 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낸 뒤 그해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호당(湖堂)에 선임된 자 들과 승정원에 나아가 시부를 지어 포상을 받았다. 그가 궐내에 노닐 때면 언제나 숙종 이 보낸 내시가 뒤따라 다니며 그가 읊은 시를 몰래 베껴 바로 숙종에게 올리게 하리만 큼 시명(詩名)을 날렸다. 1691년 세자시강원의 벼슬을 거쳐 1694년 정언(正言)에 있으면 서 홍문록에 올랐으나,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출향(文廟黜享)을 주장한 이현령(李 玄齡)의 상소에 참여했다 하여 삭제되었다.
경종 2년(1722년) 2월 양양부사로 도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있다. 그 후 벼슬 에서 물러나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며 지내다가 1724년 영조의 즉위로 승지에 제수 되었다. 이듬해 도승지•대사간을 거쳐 예문관제학에 임명되었다. 영조 6년(1730년) 병조 참판•동지의금부사•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렸고, 특히 시문과 글씨 에 뛰어났다. 저서로 『희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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