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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문화36호

    3) 어성십경(漁城十景) 창화시(唱和詩)

    페이지 정보

    조회 39회

    본문

    어성십경은 누가 언제 정하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를 바탕으로 한『어성십경창화시(漁城十景唱和詩)』가 전해져 오는데, 참여 인물과 내용을 고찰해 보면 1917년 4월에 용주(龍洲) 이용선(李容璇)이 시집을 완성하 고, 1918년 2월에 지역 유지인 최영택에게 서문을 받았고, 1920년 10월에 발간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 시집(詩集)의 체제는 아래와 같이 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어성십경을 종합적으로 읊은 것이 고, 2장부터 11장까지가 10경이다. 12장은 빠진 사람들의 시를 나중에 덧붙인 것이다.9)


    1. 어성십경총제(漁城十景總題)             어성 10경을 함께 쓰다.

    2. 운문천석(雲門川石)                        운문 냇가에 솟은 바위들의 아름다움 

    3. 오현연수(烏峴煙樹)                        오현으로 퍼져나가는 노을 물든 풍경 

    4. 화등낙조(花登落照)                        진달래가 한 창일 때 낙조의 아름다움 

    5. 은담폭포(銀潭瀑布)                        마을 서북방에 있는 은빛 나는 폭포수 

    6. 노봉명월(爐峰明月)                        노봉산 위에 비치는 저녁달의 아름다움 

    7. 용소명탄(龍沼鳴灘)                        용소 주변에 흐르는 물소리의 아름다움 

    8. 고적부운(高積浮雲)                        높은 산 겹겹이 쌓인 구름의 아름다움

    9. 내천유어(柰川遊魚)                        맑은 물속에서 떼지어 노는 물고기들

    10. 산사모종(山寺暮鐘)                      명주사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11. 모암어적(帽巖漁笛)                      모암에 앉아 낚시하며 듣는 피리 소리

    12. 추    록(追     錄)                      덧붙여 쓰다



    ■ 어성산수록(漁城山水錄)


    1917년 4월에 어성십경창화시(漁城十景唱和詩)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용주산인(龍洲散人) 이용선(李 容璇)10)이 명주사와 원통암을 중심으로 한 어성전리 주변의 산수와 풍경에 대하여 폭 넓게 소개하여 쓴 어성 산수록을 소개한다.

    “양양 현산(峴山)의 남쪽 40리(里)에 어성전(漁城田)이 있으니, 산에 둘러 쌓여 성(城)과 같았고 물은 깊어 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으며, 골짜기가 깊으나 채소밭〔場圃〕을 서로 마주하는 것이 한 골짜기 중의 명승지 였다.

    그 동북쪽의 여러 산은, 곧 오대산(五臺山)의 북쪽으로 만월산(滿月山)의 한 기슭이 북쪽으로 뻗어 와서 80~90리를 가면 큰 바위들이 뒤엉켜 신선령(神仙嶺)·철갑령(鐵甲嶺) 등의 고개와 초전치(草田峙) 등의 여 러 산이다. 갑령의 산기슭은 또 북으로 향하여 와서 강령치(綱嶺峙)가 되니, 어성(漁城) 동북의 여러 산이 다.…중략)

    남쪽으로 명주(溟州)와 강릉의 화비령(花飛嶺)을 바라보고, 북쪽으로 수성(水城), 간성(杆城)의 은봉(銀峰) 을 마주하니 무릇 수백 리(里) 내에 천 개의 봉우리와 만 개의 골짜기가 우뚝 솟고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별이 늘어서고 바둑돌이 펼쳐진 듯하다. 동쪽으로 푸른 바다를 가리키면 만 리에 바람과 파도가 넓고 넓어 끝이 없어 대장부(大丈夫)의 심회를 펼칠 만하다.

    3월부터 5월이 되면 이 봉우리 위에 구름과 달이 담박(淡泊)하게 바뀌어 참으로 사랑할 만하다. 향로봉의 동북으로 1리(里)쯤에 좌우로 갈라진 봉우리가 서로 끌어온 비탈 속 한 언덕에 동쪽으로 자리 잡고 서쪽으로 향한 것을 원통암(圓通庵)이라 한다. 회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워 좌우의 산방(山房) 이 매우 청정(淸淨)하며 마주하는 곳에 문필봉(文筆峰)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전하기를 사는 스님들이 문 사(文詞)에 능한 이가 많다고 한다. 암자의 앞의 종각에 범종(梵鍾)이 있는데 항상 저물녘이 되어 어두워지면 한적한 절의 밤 종소리는 고래 소리처럼 요란하다. 환우현(喚牛峴)은 암자의 남쪽에 있고 계명암(鷄鳴巖)은 암자의 서쪽 골짜기 입구에 있다. 길 우측 사모암(紗帽巖)은 암자의 동쪽 몇 리(里) 쯤에 있는데 암자의 서북 쪽으로부터 한 작은 고개를 넘으면 명주사(明珠寺)가 있으니, 곧 양양(襄陽)의 네 절 가운데 하나이다.

    중엽 이래 자주 화재(火災)를 겪었으니 지금은 그 옛터로 인하여 겨우 몇 간의 불사(佛舍)를 기록하였다. 절의 서남쪽을 와우대(臥牛臺)라 하고, 그 동북쪽을 청연암(靑蓮庵)이라 하는데 골짜기에는 예로부터 청연암과 무심암(無心庵) 두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폐하여졌다.

    절의 서남쪽으로부터 청련암에 이르기까지 골짜기에 비석과 탑이 첩첩한데 방산(舫山) 허훈(許薰)11)이 지 은『용악선사비명(聳岳禪師碑銘)』또한 거기에 있다.…중략)

    아! 관동(關東)이 비록 동으로 치우쳐 후미진 모퉁이에 있어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막혀 있으나, 풍토(風 土)의 아름다움은 교남(嶠南:영남)과 호서(湖西:충청도)보다 뛰어났다. 특히, 어성(漁城)의 산수(山水)와 목 석(木石)은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으나 고요히 천 년 동안 묻혀있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대체로 우리 동 방의 풍속은 산수(山水)를 유람(遊覽) 하기를 즐기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세상에 전하여지길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젊었을 때 운문암(雲門庵)의 절집에서 책을 읽었다고 하나 그 진위는 자세하지 않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일찍이 향로암(香爐庵)에서 잠시 거처하며 검달동 (黔達洞)에서 지초(芝草)를 캤다고 한다. 또,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12)이 이 땅에 왔을 때 일찍이 운문(雲 門)과 내천(柰川) 사이에서 동료와 사냥을 하며 잡영(雜詠) 몇 편을 남겨서 공의 문집에 실었다고 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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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용선(李容璇)의 생몰 연대 등 신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이 어성십경창화시(漁城十景唱和詩) 시집(詩集)의 발간을 실질 적으로 주도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에 관한 기록은 1928년 제작되어 양양 김해김씨 가에 보관된「융사계(隆師契)」라는 문서에 나타나 있다.

    11) 허훈(許薰, 1836~1907) : 자는 순가(舜歌) 본관은 김해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林隱洞)에서 태어났다. 허조(許祚, 1817~ 허조 ?)의 아들이고 선재(性齋) 허전(許傳)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방산집(舫山集)이 있다.

    12)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은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희암(希菴), 1687년(숙종 13) 진사가 되고, 1689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냄, 도승지·대사간을 거쳐 예문관제학에 임명, 1730년(영조 6) 병조참판·동지 의금부사·부제학을 역임하였다. 경종2년 (1722) 1. 3일 양양부사를 제수받아 2년 11월을 재임하였다.

    13) 峴之南四十里 有漁城田 山圍如城 水深可漁 林壑窈窕 場圃相望 一峽中名區也 其東北諸山 卽五臺之北 滿月山之一麓 透迤北來 行八九十里 磅扶輿爲神仙鐵甲等 嶺及草田峙諸山也. 鐵甲嶺之原麓 又向東北來爲綱嶺峙 卽漁城之東北諸山也 … 중략 南望溟州之花飛 北瞻水城之銀峰 凡數百里之內 千峰萬壑 崛崎蹲伏 如星羅而棋布 東指滄海 則萬里風濤 渾渾無涯 可以寬丈夫之胸次矣 至於三五月 盈氷輪淡泊宛轉於此峰 之上 眞可愛也 香爐峰之東北一里許 左右支峰相引坡陁中 有一原坐東而向西者曰 圓通庵 檜松森蔚 水石佳麗 左右山房 極爲淸淨 對案有文 筆峰 故俗傳居僧多能文詞云 庵之法堂前軒 有梵鍾 每當薄暮冥冥 鯨音噲吰彷彿寒寺夜鍾也. 喚牛峴在庵之南 鷄鳴巖在庵之西洞口 路右紗帽 巖在庵之東數里許 自庵之西北 踰 一小峴 有明珠寺 卽襄州四寺之一也 中葉以來 屢經回祿 今則因其古址 僅築數間梵宇 以誌焉 寺之西南曰 臥牛臺 其東北曰靑蓮庵 洞古有靑蓮無心二庵 今廢焉 自寺之西南 以及靑蓮庵 洞碑塔重重 許舫山薰所撰聳岳禪師碑銘 亦在焉 … 중략 噫關 東雖僻在一隅依山阻海 而風土之美 不下於嶠南湖西 至漁城之一山水一木石 快爲濟勝之資 而寥寂千載湮沒無聞 盖吾東之俗 不喜山水之游 覽而然哉 俗傳尹明齋拯年少時 讀書于雲門庵之僧舍 而未詳其眞贗 金梅月堂時習 嘗僑居于香爐庵 而採芝於達洞 又蔡希菴彭胤 莅玆土時 嘗與賓僚打獵于雲門柰川之間 有雜詠幾篇 載在公之文集云.

    14)『乾鳳寺及乾鳳寺末寺跡』161쪽 明珠寺(江原道 襄陽郡 縣北面 漁城田里)史蹟 : 二千三十六年(高麗 穆宗 十二年 己酉) 惠明·大珠 兩師가 滿月山에 寺를 刱하고 明珠寺라 名하니 兩師의 名에 各一字를 取하여 寺名을 作하니라. 毘盧遮那像을 造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