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관촉사사적비(灌燭寺事跡碑)’로 본 혜명(惠明)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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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관촉동에 위치한 관촉사는 사찰 이름보다 유명한 미륵부처님(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218 호)이 있다. 관촉사는 969년(고려 광종 19년)부터 1006년까지 37년에 걸쳐 혜명이 창건하였다.
관촉사사적비(灌燭寺事跡碑)는 1743년(영조 19년)에 관촉사에 건립되었다. 이 비석은 절의 창건 경위와 은진미륵의 조성과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중략)“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에 서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라고 혜명에게 명하였다. 불상을 완성 하여 세우자 미간의 옥호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는데,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쫓아와 예불 하였으므로 절 이름을 처음에는 관촉사(觀燭寺)라 하였으나 나중에 관촉사(灌燭寺)가 되었다 한다. 그 뒤 여 러번 중수를 하였고 1740년에 석축을 세우고 1743년에 이 비석을 세웠다. 현재 탁본은 성균관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탁본한 연대는 1970년대로 추정된다”
■ 혜명 대사의 사고(思考)의 유연성(柔軟性)과 정치적 위상
…중략)“혜명(惠明) 대사가 비록 불상은 완성하였으나 세우지를 못하여 걱정하고 있었다.”19)불상의 신장 은 55척 5촌으로 18.12m이다. 거기에 둘레만 30척으로 9.6m이다. 귀의 길이가 9척으로 2.88m이다. 그 밖에도 눈썹사이가 6척이며 입의 지름은 3척 5촌, 화광(火光)이 5척이다. 관의 높이는 8척이니 큰 덮개는 넓 이가 11척이고 작은 덮개는 6척 5촌이다.
이러하니 당시의 도구와 기술로 불상을 세우는데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짐작이 간다. 사적비에는 대 사가“마침 사제(沙梯)마을에 도착하자 두 명의 동자가 진흙으로 삼동불상(三同佛像)을 만들며 놀고 있었는 데 평지에 먼저 그 몸체를 세우고 모래흙을 쌓은 뒤 그 가운데에 다음을 세워 다시 이처럼 하니 마침내 그 마 지막 부분도 세우는 것이었다. 혜명이 주의 깊게 보고는 크게 깨닫고 기뻐하였다. 돌아와서 그 규칙과 같이 하여 이에 그 불상을 세웠으니 동자는 바로 문수(文殊)보살과 보현(普賢)보살이 현신(現身)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20)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중장비(重裝備)가 없으면 받아들여 사용하기에 충분한 지혜로 당시 혜명 대사께서는 불치하문(不恥 下問)의 정신으로 사고가 매우 유연하고 지혜로우셨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린아이가 문수와 보현보살 로 보일 정도로 이미 깨달은 분이셨다는 증거이다.21)
또한 혜명 대사가 고려 광종의 왕권 강화를 도운 대사건으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광종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968년에 논산 개태 사(開泰寺)22)가 위치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을 건립하였 다. 광종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개태사 석조삼존불 입상보다 4~5배의 더 크게 조성하게 하였다. 광 종이 태조 왕건을 능가하는 권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거대한 불상 조성을 통해 은연중에 과시하고자 하는 의 도가 반영된 것으로 광종은 집권 후반기에 등장한 반발 세력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고 그들을 통제하 고자 하는 의도가 조성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불상이라는 점과 더불어 고려 광종 집권기의 정치적 상 황을 불교를 통해서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불상 이다.
혜명 대사는 균여 대사와 대각국사 의천 사이에서 화엄학 발전에 기여 했던 승려로 제4대 광종(光宗)에서 제7대 목종(穆宗)에 이르기까지 교학 불교를 이끌었으며 화엄종 승려이면서도 법상종 계열의 관촉사를 세움 으로써 미륵신앙에 기여하였다. 또한 혜명 대사가 광종의 부름을 받고 관촉사를 창건한 것으로 볼 때 고려 전기 불교계에는 상당히 알려진 승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정치적 위치를 점한 후 창건된 명주사의 위상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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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慧明雖成神相而方以未立爲慮
20) 適到沙梯有一雙童子戱造泥土爲三同佛像卽平地而先立其本積沙土而次立其中又如是而竟立其末慧明熟視大悟欣然還來一如其規乃立厥像盖 童子卽文殊普賢化爲指敎云
21)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이야기(猪眼觀之卽猪 佛眼觀之卽佛)
22) 開泰寺는 태조 왕건이 936년부터 4년여에 걸쳐 건립한 국가 사찰이며, 왕건의 진영을 봉안한 진전사찰로서 매우 중요한 역사성을 갖 고 있다.
23) 재위기간은 632년 음력 1월 ~ 647년 2월 20일로 신라의 제27대 여왕이며 한국사 최초의 여왕이다.
24) 자장(慈藏, 590년~658년)은 신라의 스님이었고, 율사(律師)로 알려져 있다.
25)《三國遺事》권3 塔像〈臺山五萬眞身〉
26)《華嚴經》권29〈菩薩住處品〉제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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