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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문화36호

    2) 신라말에서 고려초기로 이어진 화엄사상(華嚴思想)

    페이지 정보

    조회 38회

    본문

    가. 통일신라의 화엄종풍(華嚴宗風)


    통일 신라시대 의상(義湘, 625년~702년)이 낙산을 관음(觀音)의 상주처(常住處)로 설정한 것은 신라불국 토(新羅佛國土) 신앙을 진전시킨 것이었으며, 선덕여왕(善德女王)23)대에 자장(慈藏)24)은 중국 오대산의 문수 보살로부터 감응을 얻은 후 신라에 돌아와 우리나라 오대산을 문수 성지로 정착시켜 진신 상주의 불국토 신 앙을 열었다.25)

    이 땅에 실제로 여러 보살이 상주한다는 생각은《화엄경(華嚴經)》에서 비롯된 신앙이다. 화엄경의 보살주처 품(菩薩住處品)에서는 십방(十方)에 있는 산에 각각의 다른 보살들이 수많은 권속과 함께 살고 있다고 설해진 다.26) 동북방에는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1만 권속과 함께 청량산(淸凉山) 즉 오대산에 상주하는데 우 리나라는 7세기 들어서 신앙으로 정착하였다. 후대에 정립된 동남방의 지제산(支提山) 천관보살(天冠菩薩)과 해중(海中)의 금강산(金剛山) 법기보살(法起菩薩) 신앙도 화엄경의 80화엄을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상주(常住) 설법처(說法處)로 남방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 을 규정하고 있다. 양양의 낙산(洛山)이 보타낙가산의 준말로 관세음보살의 진신 상주처다.27)


    ■ 보살상주처(菩薩常住處)


     방향

    60화엄 

    80화엄 

     보살(菩薩)

     상주처(常住處

     보살(菩薩)

     상주처(常住處)

     동(東)

     금강승(金剛勝)

     선인기산(仙人起山)

     금강승(金剛勝)

     선인산(仙人山)

     남(南)

     법혜(法慧)

     승루각산(勝樓閣山)

     법혜(法慧)

     승봉산(勝峰山

     서(西)

     무외사자행(無畏師子行)

     금강염(金剛焰)

     정진무외행(精進無畏行)

     금강염산(金剛焰山)

     북(北)

     향상(香象)

     향취산(香聚山)

     향상(香象)

     향적산(香積山)

     동북(東北)

     문수(文殊)

     청량산(淸凉山)

     문수(文殊)

     청량산(淸凉山)

     동남(東南)

     천관(天冠)

     지견고산(枝堅固山)

     천관(天冠)

     지제산(支提山)

     서남(西南

     현수(賢首)

     수제광명산(樹提光明山)

     현승(賢勝)

     광명산(光明山)

     서북(西北)

     향광명(香光明)

     향풍산(香風山)

     향광(香光)

     향풍산(香風山)

     대해중(大海中

     담무갈(曇無竭)

     지항산(枳恒山)

     제(諸)

     장엄굴(莊嚴窟)

     해중(海中)

     과거제(過去諸)

     공덕장엄굴(功德莊嚴窟)

     법기(法起)

     금강산(金剛山)



    『화엄경』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28)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 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되는 약동(躍動)적인 큰 생명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연화장세 계에서는 항상 화엄경의 중심 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조화를 꾀하고 있다. 화 엄경은 우주의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한 경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일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의 대립도 지양시킴으로 써 마음을 통일하게 하는 교설이다. 따라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전제(專制) 왕권 국가의 율령정치 체 제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삼국통일 전후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기간 742년~765년)까지는 신라 입당승(入唐僧)에 의해 화엄학과 유식종(唯識宗)인 법상(法相)학이 전래 되었지만 제 36대 혜공왕(惠恭王, 재위 기간은 765년~780 년) 이후에는 화엄종과 선종이 유행하였으며, 821년(헌덕왕 13)에 남종선(南宗禪)을 최초로 전한 도의(道 義)29)도 화엄에 깊은 조예(造詣)가 있었다.



    나. 고려의 화엄종풍


    신라말 선종이 크게 유행하자 신라 의상 계통의 화엄종 문도들은 서로 다른 화엄종 법통을 주장하며 대립 일면을 보이게 된다.30)

    그러나 고려의 제 4대왕 광종(光宗, 재위 기간은 949년~975년)31)대의 균여(均如, 923년~973년)는 고려 전기의 화엄종 승려로 광종의 전제 정치와 불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북악의 융화(融和)불교 입장 에서 남악의 사상까지를 종합하여 화엄종 교단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이후 의천(義天, 1055년~1101년)에 의해 화엄 사상을 기반으로 한 고려불교가 중흥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명주사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화엄종 계통의 사찰로 창건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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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三國遺事 권3 탑상 제4 洛山二大聖觀音正聚調信

    28)『화엄경』과『범망경』을 근거로 비로자나불과 큰 연꽃 속에 일체의 국토와 사물을 간직한 불국토를 가리키는 불교교리.

    29) 도의국사는 해동 초조로서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전한 선법을 우리나라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여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 모셔지고 있다. 당시 당나라에는 화엄교학과 함께 새로운 조사선이 확산되고 있었다.

    30) 북악파의 희랑(希朗)은 고려 태조 왕건을 지지하고, 남악파의 관혜(觀惠)는 후백제 왕 견훤(甄萱)을 지지하여 정치적으로도 대립하였다. 31) 호족(豪族) 연합을 바탕으로 건립된 고려는 태조 왕건(太祖 王建) 사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호족들 간에 대립과 다툼이 벌어졌고, 권

    력 투쟁에서 승리한 광종이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