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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양양철광산의 문화사 [증보판]

    3. 후생복지시설

    페이지 정보

    조회 307회

    본문


    1) 복지시설 현황


    양양광산의 광부들의 복지후생시설현황은 <표 6-1>에 나타나 있다.



    <표 6-1> 양양광산 공공 및 복지후생시설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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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병원시설 

    병실은 20평 정도로 원장 1명, 의사 2명, 간호사 2명, 남자 보조원 2명이 근무하였다. 병실 4개에 사체실이 1실 있었다. 허리 아픈 환자가 많았으며 광석을 다루기 때문에 손을 주로 다쳤다. 환자는 1일 10명에서 15명 정도가 발생하였다. 병실에 입원하면 물리치료를 많이 하였으며 약을 병원에서 직접 조제하여 주었다.〈1976년 자료〉


    (2) 사택시설 

    사택은 55동에 230세대가 살았다. 사택은 방 2개, 부엌이 1개로 좁은 편이다.

    과장 사택은 약 20여평, 주임사택은 17~18평정도 이었고, 사원 급은 약 15평그 밖에 독신자 사택 4~5평정도 였다. 가족이 있는 광부가 사택을 신청하면 총무과에서 방을 배정받아 입주가 시작되는데 무료였다. 독신자는 합숙소를 이용 하였는데 2개동에 42명이 있었다. 방세는 무료이나 식대는 급식 숫자를 체크 하였다가 월급날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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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5> 병원직원 및 수술광경(1957년경)


    (3) 극장 

    극장은 약 100석을 운영하였는데 저녁에 1회만 상영하고 낮에는 상영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는 양양읍내는 물론 관외지역과 속초에서도 구경 하러 왔고 속초보다 개봉 영화가 더 빨리 도착하여 많은 관람자가 있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보급된 후부터는 관람객이 없어 폐쇄되었다.


    (4) 목욕탕시설 

    목욕탕은 24시간 운영하였는데 무료이기 때문에 양양은 물론 그 외지역에서 광부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도 목욕하러 왔다. 광부들도 갱 속에서 먼지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였다.


    (5) 당구장 시설 

    당구장은 1개소에 당구대가 4개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별다른 오락시설이 없어 당구장을 많이 찾아서 늘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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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6> 당구치는 근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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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6> 당구치는 근로자들


    (6) 이발소 

    개인이 운영하는 이발소로 자유롭게 이발을 하고 장부에 외상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월급날 계산하였다. 참고적으로 60년도에는 쌀 한1말에 150원~200원이 였고, 노무자 월급은 3,900원에서 4,000원이었다.(쌀 2가마 정도)



    2) 건강증진을 위한 새마을사업 추진


    1961년 5.16일 군사혁명 직 후 박정희대통령 (당시 군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국영기업체인 양양광업소를 시찰할 당시 미 군사고문, 차○○. 이○○를 대동하고 선광장을 방문하였으며, 그 후 정부의 시책으로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바람이 불자 산업체이며 국영기업체인 양양광업소도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광산일과 새마을사업을 병행 하였는데 사업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 선광과에서는 여자 종업원들이 선광수선작업을 시작하기 전 1~2시간정도 선광과 새마을 방에서 면장갑을 만들어 종업원들에게 지급하였고 일부는 회사에 납품을 하였다. 면장갑을 만드는 실은 서울에서 구입하여 편물 장갑기계로 짜서 공급 하였는데 약 3~4년간 만들었다고 한다.

    종업원들에게 공급 할 미꾸라지 양식을 시도하였는데 미꾸라지가 살 수 있는 환경조성 미숙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선광과 사무실 앞에 토끼장을 만들고 토끼를 키웠는데 번식률이 높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대 100~200여 마리까지 사육되어 효과를 보자 공작실을 비롯한 타 부서에서도 키우기 시작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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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8> 선광과 사무실 앞 토끼장(1970년경)

     

    (2) 도목갱에서 염소를 키웠는데 그 염소가 선광과에서 토끼에게 먹이려고 준비하여 둔 먹이를 몽땅 먹어치우는 일도 있었다.


    (3) 조사과에서는 수박을 재배하고 꿀을 체취하려고 벌을 키우기도 하였다.


    (4) 그밖에 장승리 광산촌에는 미용실이 없었다. 상평국민학교에서 주부교실을 운영 양양군수 사모님과 함께 광업소 직원 부인들에게 미용기술과 함께 식생활 개선 교육을 받았다. 이런 교육으로 광산촌 부녀자들의 미용관리에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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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9> 식생활개선 전달교육(19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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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19> 식생활개선 전달교육(19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