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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시문

    박홍암께 답함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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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박홍암께 답함,  임오년(1882, 고종19) 1월 (答朴弘菴 壬午正月)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아이가 와서 12월 5일에 보내신 서신을 받았습니다. 저를 계발시키는 정성을 깊이 받아 근신하니 감사하고 죄송함을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새해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편안하게 살면서 풍족하게 운수가 좋아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다시 들어가 조금 편안합니다. 연말부터 하찮은 병이 있었는데 고통이 점점 심해집니다. 증세가 자못 가볍지 않다. 대개 이 물과 풍토로 인하여 가장 염려로 위장이 상하고 또한 한두 가지 몸조리를 잘못해서 이런 지경이 되었습니다. 주위에 의약이 없습니다. 걱정입니다..

     저의 이번 행차에 애쓰는 것은 본래 가족을 데리고 입산할 계획이었습니다. 지금 가족들이 도착하는 것도 시일을 기약하기 어렵고 신병이 갑자기 이와 같으니 형편상 집으로 돌아가 몸조리를 할 계획입니다. 경기 지역으로 들어가 다시 가문을 일으키고 조정에서도 예로 대우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안하게 거처함은 결코 성질상 편안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부득이하여 춘천 수락산(受駱山)으로 방향을 돌려 집안 진척들과 의론하여 작은 초가집 하나 임시로 빌려서 집안 식구들과 단란히 모여서 살려고 합니다.

     대개 경기 지역 안이든 경기 지역 밖이든 모두 왕이 다스리는 땅입니다. 저쪽에서 나와 이쪽으로 들어가도 단지 고개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반드시 이처럼 애쓰는 것은 단지 나의 마음에서 스스로 청렴함을 지켜 개인적인 분수를 대략이나마 편안하고자 구할 뿐입니다. 

     부끄러운 일은 설악산이 높고도 높아 오히려 우리 유자들에 추맹씨(鄒孟氏, 맹자)가 있음과 같습니다. 수락산은 즉 설악산의 곁가지 하나 남짓한 기슭입니다. 처음에는 맹씨(孟氏)에게 의탁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둘러보아 만장(萬章)‧공손추(公孫丑) 등과 담장 바깥에서 사귀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못난 것이 이와 같은데 오히려 어떻게 천하의 일을 대담하고 천하의 의리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립니다.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상세하여 앞뒤로 수천 마디입니다. 저를 아껴주심이 깊고 책망하심이 두텁고 애석하게 여김이 간절하고 구제하기를 힘써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저의 본성이 편안치 않아 끝내 타당하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참으로 한 가지 논을 철저히 다 말씀드려 품은 생각을 다 쏟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 날 동안 침상에 누워있는 나머지라 정신과 생각이 일관되지 못하여 일단 한두 가지 단서를 거론하여 별지에 실었으니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며칠 동안 추위가 조금 수그러들기를 기다렸다가 병든 몸을 안고 수락산 아래로 가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시켜 집을 알아보라고 하고 아울러 치료하는 절차도 논의하려 합니다. 병이 만약 조금 차도가 있으면 계속해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만약 병이 낫지 않고 오래 계속되면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한번 방문해 주시어 남은 회포를 마음껏 푸시기를 바랍니다. 대개 광망(狂妄)한 일행이 행동은 그 득실을 본래 따질 것이 없습니다. 오직 고명께서 논리를 가지고서 낮추었다 높였다 할 즈음에 연계됨이 작지 않습니다. 보내신 글 속에서 조만간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논하신 것을 보면 오늘날의 시국 사변에 충분히 엄중하게 보지 않은 듯합니다. 

     이 이외에 또한 한 가지 일은 철저히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말을 꺼내지 않겠습니다. 정신이 어찔하여 간신히 이 편지를 쓰니 묵묵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별지

     저는 추천을 받아 품계가 올랐지만 즉시 한두 명의 동지와 함께 상의하여 적절하게 처리를 하였습니다. 대개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 조정 대신들이 6품직으로 천거함을 요청하였으니 관직이 내려옴은 형세상 필연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6품 산직(散職)은 사직소를 올릴 길이 없고 단지 관례에 따라 도합 세 번 병으로 출근하지 못하겠다고 사직서를 올립니다. 또한 말할 자리를 계속해서 얻기를 기다렸다가 일단 불안한 심정을 이야기합니다.

     하나. 세 번의 사직서에서 대략 불안한 심정을 나타냄도 안 될 것도 없습니다.

    하나. 당연히 도당(都堂 의정부)에 글을 올립니다. 제 생각으로는 병을 핑계대고 사직서를 올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참으로 이렇게 하면 합당하게 처리한 것으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우리 초택인(草澤人)에 대해서는 이미 관례적인 투식이 있습니다. 벼슬을 얻어서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도 응대하는 방식이 또한 이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것은 무슨 변절이며, 이렇게 처신한다면 그 마음에 편안하겠습니까.

     또한 불안한 심정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지만 다시 한 등급을 높여서 남직(濫職 함부로 관직을 줌)을 기다림은 더욱 편치가 않아서 결코 따르지 않겠습니다. 아래의 두 가지 설(說)은 심정을 드러낼 수 있겠지만 하나는 초솔(草率 대충 간략함)하고 하나는 장대(張大 과장하여 큼)합니다.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고도 다시 또 생각을 해서 두 가지 설을 지었는데 모두 직책을 받은 후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관직을 받은 후에 고생을 하고 받은 은혜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보다는 차라리 관직을 받기 이전에 심정을 드러내어 관직 받음을 면할 기대를 가짐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개 요즈음의 관례를 보니 추천을 받고서도 직책을 주지 않는 경우도 역시 때때로 있습니다. 만약 거취를 한결같이 하여 조정 실세자에게 심정을 드러내어 보인다면 직명(職名)이 옴을 면할 수 있음도 전혀 이런 이치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혹 관례에 따라 한 차례 오더라도 결코 두 번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미 이처럼 의리에 따라 처신하여 마음이 분명해지고 나면 직명이 오든 안 오든 간에 나의 일에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로서 산에 들어갈 계획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산에서 나올 시기도 역시 여러 설이 있습니다.

     하나. 우리들은 병자년(1876 병자수호조약을 말함) 이후부터는 의리에 입각하여 지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시국이 날로 변하여 차츰차츰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사우들이 화를 입고 나서부터는 역시 죄를 받고 함께 폐하자는 의리를 이미 지키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예컨대 강석(講席)에서 번거로운 절차는 줄여 없애고 남의 글 청탁에 부응하지 않고, 남의 집지례(執贄禮)를 받지 않는 것들이 

    - 이 두 가지 일은 본래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근래에 한결같이 핑계를 대고 거절하였다. - 

     이것입니다. 오늘 산에 들어가는 행동은 특별히 직명이 내려온 것 때문에 울분이 터져 나와 그렇게 한 것이니, 시간이 지나고 사태가 수습되면 스스로 당연히 그 본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 이미 이처럼 의롭게 처신하기로 하였으니 사우들이 석방되는 날을 기다림이 좋겠습니다.

     하나. 당연히 자정지의(自靖之義)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종일관 같이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최후의 일설(一說)이 가장 좋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의 형세에 제한을 받아 지연됨을 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기 지역 안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강원도 지역에서 지내는 것은 초심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리에 맞게 처신한 시말의 대략은 이와 같습니다. 그 잘잘못과 정당성 여부는 안목 있는 사람이 바로잡아 주기를 삼가 기다립니다. 보내신 가르침에서 저의 처신이 중(中)을 벗어났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경건히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중으로 가르침을 주신 것에 대해서도 역시 중에 맞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중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이 때에 따라 알맞게 처신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일단 정상적인 법도로 변화에 대처하고자 하시므로 중이 여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내신 가르침에서 또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직명(職名)은 무마시킨다는 뜻을 보여주는 점이 있고 인간적인 도리로 대처하지 않으면 정권 실세들의 마음을 복종시키기에 부족하다고 하셨는데, 저로서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마(撫摩)라고 말을 함은 참으로 그 사람이 쓸만하다고 여겨서 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불평한 감정을 특별히 고려하여 일단 이익을 안겨주고 편안히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선비를 대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더구나 어제는 죄도 없는데 그 스승에게 형벌을 내려 귀양을 보내고, 오늘은 달콤한 이익으로 그 제자를 무마하고 있습니다. 어찌 한 조각 인간적인 도리로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省齋集』




    「答朴弘菴」 壬午正月 


    兒至. 拜臘月五日惠書. 深荷啓發之勤. 感悚不可言. 履玆新元. 燕申起居茂膺吉祥. 區區勞禱. 重敎入山稍安適. 自歲末有微恙. 呻唫轉深. 症情頗不輕. 盖因水土不服之餘. 亦有一二失攝之端以致此. 最是傍無醫藥. 爲可悶也念. 區區此行. 本爲挈家入山之謀. 今眷屬之至. 難以時日期. 而身病遽已如此. 勢須將身就家. 以圖調治. 而還入畿內. 復開門庭. 晏然自居以 朝家禮待之人. 此决非介性所安. 不得已欲轉就春川受駱山中. 謀諸宗. 權借一小屋. 爲團聚家眷計. 盖畿內畿外. 同是 王土. 出彼入此. 只爭一嶺. 而區區必欲如此者 只是於我心上. 自立廉防. 以求觕安其私分耳. 所可愧者. 雪嶽巖巖. 猶吾儒之有鄒孟氏也. 受駱卽其一枝餘麓也. 始欲托迹於孟氏而不得遂焉. 顧乃與章丑輩論交於門墻之外. 爲人之下劣如此. 尙何足以談天下之事. 論天下之義耶. 還發一笑也. 誨諭縷縷首尾數千言. 可見其愛之深而責之厚. 惜之切而救之力. 寧不可感也. 惟於吾性所不安處. 終有不貼然處. 政欲極言一論. 以畢所懷. 而累日伏枕之餘. 神思不貫. 姑擧一二端在小幅. 幸垂諒焉. 數日間. 竢凮寒稍弛. 欲舁疾就駱山下. 縱兒謀屋. 兼議診治之節. 病若少歇. 當續有陳禀. 若至沉綿不可強. 則猥望一番臨視. 以暢餘懷. 盖狂妄一行. 其得失本不足多較. 唯高明者持論低仰之際. 其所係不細 而竊觀來諭所論自廢早晩處. 似於今日時變. 看得不十分嚴重. 外此亦有一事不敢不極論. 今姑不發端耳. 神眩艱此. 只冀默會. 

    別紙

    重敎旣被薦陞品. 卽與一二同志. 商量處義. 大槩有數說. 一曰. 大僚旣以六品職檢擬爲請. 則職名之來. 勢所必至. 而六品散職. 無陳疏之路. 只得循例合三呈病. 且俟繼得言地. 一言其不安之情. 一曰. 於合三之狀. 略示不安之情. 未爲不可. 一曰. 當上書都堂. 愚意呈病辭免. 在他人則固可以是爲處義 在吾輩草澤人. 已成例套. 雖得之以爲甚榮者. 其所以應之. 亦不過如此. 今吾所遭. 是何等變節. 欲以是處之而自安其心乎. 且欲一言其不安之情. 而竊俟濫職之更加一層. 尤所未安. 此决不敢從. 惟下二說. 若可以見情. 而一涉草率. 一涉張大. 方且商量左右. 旋復思之. 以爲此二說. 皆在旣授職之後. 與其勞攘於旣授職之後而無所補於蒙累. 無寧早見情於未授職之前而或有望於得免. 蓋觀近例. 被筵薦不授職者亦時有之. 若以一去就. 見情於當路. 則其得免職名之來. 不可謂全無是理. 政使循例一來. 决不至有再來. 且旣如此處義. 心迹明白. 則其來不來自不干我事. 此區區所以妄决入山之計也. 至若出山之期則亦有數說. 一曰. 吾輩自丙子以後 固已引義自靖. 特時事日變. 故一節深於一節. 自昨年師友禍故以後. 亦已守引罪共廢之義. 其形諸迹者. 如講席節去儀文及不應副人文字. 不受人執贄禮 此二事本非所喜. 而近日則一以此爲辭而拒之.  之類是也. 至於今日入山之擧. 特因職名之將來. 有所激慨而發. 則時移事過. 自當還他本分. 一曰旣已如此處義. 則且待師友蒙釋之日可也. 一曰. 當與自靖之義偕始終. 愚意盖以最後一說爲長. 而今爲事勢所限. 不免遷就. 然猶不還入畿內而寓關東地者. 不欲變初心也. 區區處義始末大槩如此. 其得失當否. 恭俟具眼者監正焉. 來諭以愚所處爲過中. 此固不敢不敬從. 但其所示以爲中者. 亦未見其爲中. 盖所貴乎中者 爲其隨時而處宜也. 今欲一以常處變. 所以竊恐其中不在是也. 來諭又言今日職名. 謂示撫摩之意則有之矣. 而謂不以人理相處. 則不足以服當路之心. 竊所未諭. 凡言撫摩者. 非眞以其人爲可用而用之. 特慮其中有不平之情. 而姑啗利以安之耳. 此已非待士之道. 况昨日以非罪刑竄其師. 而今日以美利撫摩其門徒. 豈復以一分人理相處耶. 請更思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