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부(雞林府) 공관(公館) 서루(西樓)의 시서(詩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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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림부(雞林府) 공관(公館) 서루(西樓)의 시서(詩序)
이곡(李穀)
내가 동경(경주)의 객사에 도착하여 뒤에 동루(東樓)에 올랐다. 아름다운 경치가 특별히 없었지만 서루에 올라가 보았더니 자못 꽤나 화려하고 앞이 툭 틔어서 성곽과 산천이 한눈에 모두 볼 수 있었다.
삼장법사(三藏法師) 선공(旋公)이 의풍루(倚風樓)라고 세 자가 큰 글자로 쓴 현판만 붙어 있을 뿐 제영(題詠)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
오직 1000년을 왕도(王都)로서 고현(古賢)의 유적이 가는 데마다 때때로 남아있다. 본국에 편입되어 동경이 되었고, 또 장차 500년이 되려고 한다. 번화하고 아름다운 동남 지방의 으뜸이다. 부절(符節)을 나누어 받고 이곳에 와서 풍속을 관찰하고 교화를 선양한 자들 또한 시인 묵객이 많았다. 반드시 홍벽(紅壁) 사롱(紗籠)과 은구(銀鉤) 옥저(玉筯)가 그 사이에서 휘황하게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보는 것은 빈헌(賓軒)에 걸린 절구 한 수가 유일할 뿐이다. 이 시는 선유(先儒) 김군수(金君綏)가 먼저 수창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관사에 화재가 났을 때 시판(詩板)도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공의 시만 어째서 유독 불타지 않았으며, 화재가 난 뒤의 시들은 또 어째서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혹자의 말도 증거가 부족하다.
향교의 어떤 유생이 말하기를,
김공의 시가 지금 우연히 남아 있어 100년 전 풍류 인물(風流人物)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대개 그 당시에는 백성이 순박하고 정사가 간편하여 우연히 일이 생기면 선뜻 처리하고 흥이 풀곤 하였다. 문서를 앞에 벌여 놓고 이와 함께 뒤에 진열해 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르게 여기지 않았고 자기 자신도 혐의로 여기지 않았다. 100년이 지난 뒤에는 스스로 겉모양을 닦는 데에만 급급하다. 나머지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조차 때에 맞지 않을까 겁내고 있다. 어찌 감히 참여하여 시를 읊어 부유(腐儒)의 시빗거리를 제공하려고 하겠는가.
지금 선생은 풍속을 관찰하고 교화를 선양할 책임도 없이 자연의 승경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다. 만 길 높이의 풍악과 설산(설악산)을 마음껏 관람하고, 다시 철관(鐵關 철령(鐵嶺) )을 넘어 동해로 들어와서 국도(國島)의 기이한 비경을 끝까지 돌아보았다. 드디어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총석정(叢石亭)의 옛 비갈(碑碣)과 삼일포(三日浦)의 단서(丹書) 여섯 글자를 어루만져 보았다.
영랑호(永郞湖)와 경포(鏡浦)에 배를 띄우고 사선(四仙)의 유적을 탐방하였다. 성류굴(聖留窟)을 촛불로 밝혀 그 신령스러운 모습을 빠짐없이 구경한 뒤에 드디어 이곳에 이르렀다.이 유람이야말로 원하는 대로 실컷 구경했다고 이를 만하다. 비록 신라 고도(古都)의 장관과 조망이 모두 이 누대 안에 모여 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다면 이는 선생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고 하였다.
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앞에서 운운하지 않았던가. 다만 나는 시인 묵객의 무리가 되지 못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유생의 말에 깊이 느껴지는 점이 있었고, 또 이를 통해서 세상의 변천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장구(長句) 사운(四韻)의 시 한 수를 지어서 이 누대에 오르는 자들에게 보여 주기로 하였다.
동쪽 수도 풍물이 항상 번화하고 東都風物尙繁華
다시 높은 루 일으켜 노을을 떨쳤어라 更起高樓拂紫霞
성곽은 천 년을 이은 신라의 나무이고 城郭千年羅代樹
여염은 반절이나 부처 모신 집들일세 閭閻一半梵王家
구슬발 다 걷으니 마치 그림 같은 산 珠簾捲盡山如畫
옥피리 다 불어도 아직 날은 기울지 않네 玉笛吹殘日未斜
기둥에 기대어 시 읊자니 혼자 웃으며 倚柱吟詩還自笑
다시 와도 벽사롱(碧紗籠)은 필요없다오 重來不必要籠紗
『稼亭集』
「雞林府公館西樓詩序」
余至東京客舍. 登東樓. 殊無佳致. 迺陟西樓. 頗壯麗軒豁. 城郭山川. 一覽而盡. 三藏法師旋公大書倚風樓三字. 而無題詠者. 惟是府千年王都. 古賢遺迹. 往往而有. 自入本國. 爲東京亦將五百載. 其繁華佳麗冠於東南. 而仗節觀風. 剖符宣化者. 又多詩人墨客. 意必有紅壁紗籠銀鉤玉筯輝映其間. 以今所見. 惟賓軒所題一絶句在耳. 先儒金君綏首唱也. 或言曩館舍災. 詩板隨以亡. 然金詩何獨不火. 火後之作. 亦何不見. 或者之言. 不足徵也. 有一鄕校生曰. 金詩之偶存. 可以想見百年前風流人物也. 盖於其時. 民醇政簡. 遇事輒裁 遇興輒發. 至於簿領陳於前. 絲竹列於後. 人不爲非而自不爲嫌也. 百年之後. 促促然務自脩飭. 一嚬一笑恐或不時. 安敢登臨嘯詠. 以取腐儒之誚. 今先生無觀風宣化之勞. 以尋眞探勝爲事. 縱觀楓岳. 雪山萬仞. 又踰鐵關入東海. 以窮國島之奇祕. 遂遵海而南. 摩挲叢石亭之古碣. 三日浦之丹書六字. 舟泛永郞湖鏡浦. 以訪四仙之遺躅. 燭照聖留窟. 以極其幽恠. 而卒至於斯. 其於游觀. 可謂厭飫矣. 雖然. 新羅古都. 壯觀遐眺萃於此樓. 而無一語以去. 爲先生羞之. 余應之曰. 吾旣不云云乎哉. 但不能爲詩人墨客之流耳. 然於諸生之言. 深有所感. 而且得以觀世變. 因成長句四韻. 以示登斯樓者云
東都風物尙繁華. 更起高樓拂紫霞. 城郭千年羅代樹. 閭閻一半梵王家. 珠簾捲盡山如畫. 玉笛吹殘日未斜. 倚柱吟詩還自笑. 重來不必要籠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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