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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에 안찰사로 가는 황숙공을 보내며 4수[送黃叔貢按察嶺東 四首] 용재(容齋) 이행(李荇) 102)
고삐를 잡고 영동으로 나가며 攬轡出東道
구름을 보고 북당을 생각하리 望雲懷北堂
융숭한 성은 근친을 허락하니 殊恩許榮覲
색동옷에 은장이 어려 비치도다 彩服映銀章
왕사에 어찌 쉴 겨를 있으랴만 王事寧遑息
차마 어버이 상심케 할 수 없어라 親慈未忍傷
징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徵黃無幾日
배명하여 다시금 술잔 올리누나 拜命更稱觴
평생에 흠모하는 벗 황숙도는 平生黃叔度
문장이 한나라 작가에 필적하지 文字漢西京
이제 또 동문의 이별을 하니 又作東門別
북수의 정을 장차 어이 견딜꼬 那堪北樹情
밭의 외는 하마 딸 때가 되고 園瓜期且摘
강의 잉어는 때로 삶을 만하리 江鯉可時烹
이 늙은이 시를 적어둔 곳으로 老子題詩處
월정을 평소에 늘 기억하노라 尋常記月精
월정(月精)은 절 이름이다.(月精 寺名)
지난날 장맛비를 만났을 적 往時遭雨潦
한 가닥 길에서 각자 엇갈렸지 一路各差池
세상일이란 참으로 우스운 것 世事眞堪笑
덧없는 인생 만날 기약 없어라 浮生未有期
서로 만났다가 다시 이별하고 相逢還作別
술잔 잡고 한편 시를 논하누나 把酒且論詩
낙산사에 의춘의 시축이 있으니 洛寺宜春軸
한가한 틈에 설미를 찾아보시라 乘閑問雪眉
낙산사(洛山寺)의 중 설미(雪眉)가 지정 상공(止亭相公)의 시를 얻어 시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다.[洛山寺僧雪眉 得止亭相公詩爲軸 故云]
경치 좋기 로 동해가 이름났나니 勝絶傳東海
노쇠한 몸 젊어 놀던 때 추억노라 衰遲憶壯遊
대평에서는 술 깨어 말을 달렸고 臺坪醒走馬
경포에서는 술 취해 누대에 올랐지 鏡浦醉登樓
개골산 못 가본 게 한으로 남건만 遺恨乖皆骨
이내 생애 이미 늙어 백발이로세 餘生已白頭
이 푸른 봄날 그대를 보내노니 靑春謝吾子
마음대로 신선의 산을 찾아보오 隨意訪丹丘
『容齋集』
○ 영동(嶺東)에 안찰사(按察使)로 가는 황숙공(黃叔貢)을 보내며 4수(四首)
고삐를 잡고 영동으로 나가며 攬轡出東道
구름을 보고 북당을 생각하리 望雲懷北堂
융숭한 성은 근친을 허락하니 殊恩許榮覲
색동옷에 은장이 어려 비치도다 彩服映銀章
왕사에 어찌 쉴 겨를 있으랴만 王事寧遑息
차마 어버이 상심케 할 수 없어라 親慈未忍傷
징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徵黃無幾日
배명하여 다시금 술잔 올리누나 拜命更稱觴
평생에 흠모하는 벗 황숙도는 平生黃叔度
문장이 한나라 작가에 필적하지 文字漢西京
이제 또 동문의 이별을 하니 又作東門別
북수의 정을 장차 어이 견딜꼬 那堪北樹情
밭의 외는 하마 딸 때가 되고 園瓜期且摘
강의 잉어는 때로 삶을 만하리 江鯉可時烹
이 늙은이 시를 적어둔 곳으로 老子題詩處
월정을 평소에 늘 기억하노라 尋常記月精
월정(月精)은 절 이름이다. 寺名
지난날 장맛비를 만났을 적 往時遭雨潦
한 가닥 길에서 각자 엇갈렸지 一路各差池
세상일이란 참으로 우스운 것 世事眞堪笑
덧없는 인생 만날 기약 없어라 浮生未有期
서로 만났다가 다시 이별하고 相逢還作別
술잔 잡고 한편 시를 논하누나 把酒且論詩
낙산사에 의춘의 시축이 있으니 洛寺宜春軸
한가한 틈에 설미 103) 를 찾아보시라 乘閑問雪眉
경치 좋기 로 동해가 이름났나니 勝絶傳東海
노쇠한 몸 젊어 놀던 때 추억노라 衰遲憶壯遊
대평에서는 술 깨어 말을 달렸고 臺坪醒走馬
경포에서는 술 취해 누대에 올랐지 鏡浦醉登樓
개골산 못 가본 게 한으로 남건만 遺恨乖皆骨
이내 생애 이미 늙어 백발이로세 餘生已白頭
이 푸른 봄날 그대를 보내노니 靑春謝吾子
마음대로 신선의 산을 찾아보오 隨意訪丹丘
『용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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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이행(1478(성종 9)~1534(중종 29)의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이다. 박은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江西派)라고 불렸다. 1495년(연산군1) 증광 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전적을 역임했고, 『성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었고,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교리에 등용,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대사헌·대제학·공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펴내는 데 참여했고, 1531년 김안로를 논박하여 좌천된 뒤 이듬해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당시(唐詩)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발한 착상과 참신한 표현을 강조하는 기교적인시를 써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용재집』이 있고,. 1537년 신원(伸寃)되었고, 중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103) 洛山寺僧雪眉。得止亭相公詩爲軸。故云。
낙산사(洛山寺)의 중 설미(雪眉)가 지정 상공(止亭相公)의 시를 얻어 시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