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양양문화원
HOME 문화원소식
  • 자료실
  • 낙산사 시문
  • 자료실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양창해

    페이지 정보

    조회 409회

    본문

     

    ○ 양양(襄陽) 낙산사(洛山寺)에서      양창해(楊滄海)가 절구 한 수를 지음.


    푸르고 푸른 안개 누각은 삼천 길이나 되고 靑靑霧閣三千丈

    희고 흰 구름 창은 일만 리 하늘과 같구나 白白雲窓萬里天

    바라보다 뗏목을 잡으나 사람 보이지 않으니 望望乘槎人不見

    알지 못할 곳에서 누선(樓船)이 뜨네. 不知何處泛樓船


    『五山說林草藁』, 車天輅撰




    ○ 권공 운경 104) 진 이 양양 부사로 나가게 되어 시를 지어 전송하며 [權令公雲卿出知 襄陽府詩以送行 縉]


    한 쌍 깃발 앞세우고 멀리 대제 105) 를 향해 가니 雙旌遙向大堤馳

    양호와 두예 106) 의 풍류가 또 한 때 나타났구려 羊杜風流又一時 

    산공 107) 이 술에 흠뻑 취한 곳 다시 찾아가면 更訪山公酩酊處 

    습가지(習家池) 108) 를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소 不知能認習家池


    낙산사 이름난 절 우리 동방의 으뜸이니 洛山名刹冠吾東 

    어렸을 적 유람한 자취 꿈속에 아련해라 少歲遊蹤一夢中 

    참선하는 절 방은 푸른 바다에 임했으니 禪室上房臨碧海 

    새벽이면 둥근 해가 붉게 떠오른다네 淸晨騰出日輪紅


    양군의 재주가 동쪽 지방에서 으뜸이니 楊君才調擅東隅

    초서와 시의 대가여서 대무 109) 와 같도다 草聖詩豪若大巫

    부친의 솜씨 본받아 글씨를 잘 쓰니 身後典刑能作字

    바닷가에 잠부 110) 가 있음을 기억해야 하리  海濱須記有潛夫

    양봉래 111) 의 아들이 양양의 경내에 살고 있다. 楊蓬萊之子寓於境內


    아득한 안개 속에 층층 산봉 옥처럼 솟았으니 玉立層巒杳靄間 

    하늘을 가로지른 설악산은 새하얀 모습인데 橫空雪嶽雪霜顔 

    양양 경내의 진산이 된 것에 연유하여 只緣作鎭方城境 

    오래도록 시인들에게 현산 112) 에 비견된다네 長被詩人擬峴山


    『월정집』


    -------------------------

    104) 권공 운경: 권진(權縉, 1572~1624)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경, 호는 수은(睡隱)이다.

    105) 대제(大堤): 양양(襄陽)을 가리킨다. 원래는 중국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에 있는 큰 제방을 지칭하는 말인데, 악부(樂府)인 「襄陽樂」 속에 ‘大堤曲’이 들어 있어서, 양양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양양이 같은 이름이어서 적용한 것이다.

    106) 양호(羊祜)와 두예(杜預): 진(晉)나라 때 양호와 두예가 앞뒤로 중국 양양(襄陽)의 태수가 되었다.

    107) 산공(山公): 진(晉)의 산간(山簡)으로 자는 계륜(季倫)이다. 당시 사람들이 산공이라고 불렀다. 죽림칠현 중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아들인데 술을 좋아하여 양양의 태수가 되었을 때 늘 고양지(高陽池)에서 노닐면서 번번이 대취하였다. 『晉書』 卷43 「山簡列傳」 

    108) 습가지(習家池): 옛날 중국 양양(襄陽)의 호족(豪族)인 습씨(習氏)들의 아름다운 원지(園池)인데, 산간(山 簡)이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을 때 이곳의 빼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매번 와서 술을 마시고 갔으며 이곳을 고양지(高陽池)라고 명명하였다. 『晉書』 卷43 「山簡列傳」

    109) 대무(大巫): 법술이 아주 뛰어난 무당을 말하는데, 학문이나 기예에 크게 뛰어나서 자신이 경복(敬服)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三國志補註』 권6 「吳書」에, “이른바 소무(小巫)가 대무(大巫)를 만난 것처럼 신기(神氣) 가 다 빠져버립니다.(所謂小巫見大巫, 神氣盡矣.)”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贈韋左丞丈濟」에 “생각지 못했다오 남은 힘 자랑하다 도리어 와서 대무를 뵙게 될 줄〔不謂矜餘力, 還來謁大巫.〕”라고 하였다.

    110) 잠부(潛夫): 뜻을 펴지 못한 불우한 처지의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양사언의 아들 양만고(楊萬古, 1574~1655)를 이른다.

    111) 양봉래(楊蓬萊): 양봉래는 양사언(楊士彦, 1517~1584)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이다. 형 양사준(楊士俊), 아우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문명을 떨쳐 중국의 미산 삼소(眉山三蘇)에 견주어졌다. 아들은 양만고(楊萬古)로 문장과 서예로 이름났다.

    112) 현산(峴山): 중국 양양현 서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양호(羊祜)가 일찍이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으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관계로 그 지방 백성들이 양호의 덕을 사모하여 현산에 비(碑)를 세워 그를 기렸는데, 이 비를 바라보는 마음을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