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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안경운

    페이지 정보

    조회 417회

    본문

     

    ○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부사 안경운(安慶運) 114)


    세월이 헛되이 지나 공직 가운데 있었고 光陰虛度簿書中

    이 승경에 있게 되니 다행 아니겠는가 何幸名區此會同 

    관음굴에 빠르게 임하려니 몸에 깃이 나려하고 仙窟快臨身欲羽

    불대(佛坮)에 높이 오르니 겨드랑이에 바람이 이네 佛坮高陟腋生風

    초운(楚雲)은 골짜기를 막아 신의 발자취 남았고 楚雲鎖峽留神躅

    복희씨 기뻐해서 진성(辰星)을 침범한 하늘에 오르네 羲馭侵最上太空 

    경관 감상은 끝나지 않았지만 돌아갈 마음에 淸賞未闌歸意動 

    인간은 가히 머리가 센 노인을 비웃을 만하네 人間可笑白頭翁


    『峴山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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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안경운의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자는 선여(善餘)이다. 1725년(영조1)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8년(영조 14) 1월 전라북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지만 1738년 10월에 백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감금되었다. 1740년(영조 16) 9월 조동점(趙東漸)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43년(영조 19) 3월에 사직(司直)에 임명되어 제주를 떠났다. 1743년 연희각(延曦閣) 동쪽 과수원 안에 있는 귤림당(橘林堂)을 중수하였다. 또 조정에 진휼곡 5천 석을 요청하여 굶주린 백성에게 공급하였고, 1743년에 운주당(運籌堂)을 중수하였다. 1745년(영조21) 정월에 양양부사로 도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