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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박순

    페이지 정보

    조회 421회

    본문

     

    ○ 증낙산사승(贈洛山寺僧)      사암(思庵) 박순(朴淳) 121)


    낙산의 기이한 절경은 맑은 새벽 있어 洛山奇勝在淸晨 

    산승이 말을 듣고 나가 보니 今聽山僧語動人 

    만리의 붉은 물결 푸른 물에 지고 萬里赤波漫碧落

    백령이 치받아 새해에 든다. 百靈扶出火輪新


    『思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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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박순 (朴淳)1523(중종 18)~1589(선조 22).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충주.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아버지는 한성부 좌윤우(祐)이다. 1553년(명종 8)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전적·수찬·사인 등을 지냈다. 1555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한산 군수·직제학·동부승지·이조참의 등을 거쳤다. 1565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 대사헌 이탁(李鐸)과 함께 척신 윤원형을 탄핵하여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그뒤 대제학·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72년(선조 5)부터 약 15년간 영의정을지냈다. 동서당쟁이 심할 때 이이·성혼 등을 편들어 상소하다가 도리어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그뒤직에서 물러나 영평(永平) 백운산(白雲山)에 은거했다. 서경덕의 문인으로 천지(天地)의 생성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 태허설(太虛說)을 주장했다. 또한 정치의 도(道)는 충과 효라면서, 자신으로 보면 집안이 먼저이고 나라는 뒤이지만 예(禮)로써 보면 나라가 존귀하고 집안은 낮다고 했다. 글씨는 송설체(松雪體)에능했으며, 시는 당시풍(唐詩風)을 따랐다. 저서인 〈사암집〉은 동서분당(東西分黨)이 싹틀 선조 당시의주변 실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개성 화곡서원(花谷書院), 광주 월봉서원(月峰書院), 나주 월정서원(月井書院), 영평옥병서원(玉屛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