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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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손재(損齋) 조재호(趙載浩) 152)
송제마을은 바다 위에 뜬 구름 옆에 쑥 나오고 松提突風海雲傍
굽어보니 창해는 매우 묘묘하네 俯視滄溟極渺茫
산줄기하나는 설악을 따르고 山出一支從雪嶽
하늘 열고 땅을 갈라 금강에 견주었네 天開別地較金剛
문 앞에 가까운 어룡굴 門前近接魚龍窟
다락 밖에는 일월광을 태평스럽게 대하네 樓外平臨日月光
발밑 찬 기운은 만리에 통하고 脚下冷氣通萬里
배는 가벼워 붕새와 더불어 날고자 한다 舟輕歎與大鵬翔
『損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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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조재호(1702,숙종28~1762,영조38)의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자는 경대(景大), 호는 손재(損齋)이다. 동생이진종(眞宗,영조의 아들인 효장세자)의 비 효순왕후(孝純王后)이다. 1739년(영조 15) 우의정 송인명(宋寅明) 의 추천으로 세자시강원에 등용되어 서연(書筵)에 참여했다. 1744년 홍산현감(鴻山縣監)으로 재직 중 춘당대문과에 급제했고, 승지로 특진한 뒤 지돈녕부사·경상도관찰사·이조판서·우빈객을 역임했다.
1754년 우의정이 되었고, 다음해 세자책봉 문제를 정리한 〈천의소감 闡義昭鑑〉 편찬의 도제조(都提調)를 겸했다. 1762년 장헌세자의 폐위문제가 대두되자, 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소를 올렸으나 오히려 역모 혐의가 씌워져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1775년 신원되었다. 저서로『 손재집』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