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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6백년 미래를 잇는 양양문화원

    낙산사 시문

    이이명

    페이지 정보

    조회 398회

    본문

     

    ○ 차제낙산사(次題洛山寺)     소재(踈齋) 이이명(李頤命) 160)


    티끌 속의 정기 날리며 서쪽으로 와 西來旌旗暗飛塵

    낙산사에 이틀 머물며 한만 새롭네 信宿琳宮恨轉新

    바다의 안개는 돋는 해 가리고 海霧苦遮暘谷日

    산의 꽃은 반이 지고 봄 동산 그윽하네 山花半謝祇園春


    『金剛山詩集』 下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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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이이명(1658,효종9)~1722,경종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지인(智仁)·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이다. 조부는 영의정 경여(敬輿)이며, 아버지는 대사헌 민적(敏迪)이다. 1680년(숙종6) 별시문과에 급제, 홍문관정자에 기용된 후 박사·수찬·응교·헌납·이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168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승정원의 승지가 되었다. 대사간까지 승진했다. 1701년에 예조판서로 특임되었으며, 이후 한성부판윤·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1706년 우의정에 올랐으며, 1708년에는 좌의정에 올랐다. 소론의 격렬한 공격을 받아 관작을 삭탈당하고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죽음을 당했다. 저서는 『소재집』·『東國疆域圖說』·『 田算撮要』·『江都三忠傳』 등이 있다. 과천 사충서원(四忠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강원도 관찰사로 양양을 순례하며 낙산에 묵으며 쓴 것으로 보인다. 띠끌 속에 관찰사의 정기를 앞세우고 공무로 와 낙산사에 머무니 고요하고 한가로운 산사는 몸과 마음 모두 맑아지고 깨끗하게 느껴지고 새롭기만 하다. 낙산의 장관인 일출은 안개가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산꽃들이 반은 졌지만봄 동산이 그윽하기만 한 모습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