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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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찰사에게 올림 219)
새해를 맞이하여 순사또의 건강이 신령의 가호로 만강하시며, 부모님께서도 한결같이강녕하시리라 믿으며, 위로와 축하를 아울러 올리는 정성을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하관(下官 연암의 자칭 )은 지난겨울에 독감을 거듭 앓고부터 두 다리에 힘이 없어지더니, 그대로 무릎이 오그라붙어 펼 수 없게 되어 버려, 안방에서 움직이는 데도 반드시 부축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해가 바뀐 뒤 이처럼 오랜 시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나아가 새해 인사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어찌 그지 있겠습니까.
지금 예조의 관문(關文)에 “신흥사(神興寺)의 잡역을 경감한 뒤로 종이에 먹도 마르 기도 전에 불법 징수가 전보다 10배나 더하다.”고 하고, 심지어 ‘수향리(首鄕吏)를 상사 (上使) 220) 하여 엄형으로 다스리라’는 조처까지 있으니, 그 땅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으로 서는 너무도 놀랍고 두려워 몸 둘 바가 없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잡역 경감에 대한 절목(節目)을 영문(營門) 감영으로부터 반첩(反貼) 221) 받아 책자로 만들어서, 하나는 영문에비치하고 하나는 본부(本府 양양부)에 비치하고 하나는 그 절에 보내어 증빙할 자료로 삼았으니, 설사 탐관오리가 있다 한들 어찌 구구하게 몇 권(卷) 222) 의 종이를 절목 이외에 더 징수하려 하겠습니까.
또 관속(官屬)들이 시방 그 절로부터 협박받는 처지가 되어, 조심조심 날을 보내며오히려 털끝만큼이라도 탈이 잡힐까 두려워하는 판국인데, 또한 어찌 감히 멋대로 10배의 불법 징수를 자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利害)를 놓고 헤아려 보면 절대로 이럴 리는 없습니다. 진실로 관문의 내용과 같다면, 아무 것도 꺼릴 바가 없는 듯이 구는 절의중들이 어찌 절목을 하나하나 들어 본관(本官 양양 부사)에게 따져 바로잡지도 않고, 또한 어찌 의송(議送) 223) 을 순사또에게 올리지도 않고서, 감히 감영과 고을을 무시한채 단계를 건너뛰어 경사(京司 중앙 관청)에 호소하여 무난히 사실을 날조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하관이 재임한 지지난해 시월 보름부터 이달 그믐까지 겨우 100일을 채웠습니다. 그래서 고을 일에 대해서는 아직 두서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 시행해야 할 모든 일은 단지 문서화된 규정을 살펴 행할 뿐입니다. 이른바 삭납지지(朔納紙地) 224) 는 두어 권에불과한 데다, 비록 명색은 관납(官納)이나 본래부터 넉넉한 값으로 사서 썼으며, 지금은 또 값을 더 쳐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 감영에서 소용되는 지석(紙席 두꺼운 종이로 만든 자리 )과 상사(上司 직속 상급 관청)에 전례에 따라 납부하는 것도 모두 본전(本錢)으로 직접 샀으며 조목에 따라 값이 매겨져 있으니, 한 번 조사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세세한 일이라 많은 변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저 본부(本府)에 신흥사(神興寺)가 있는 것은 바로 한 고을의 난치병과 다름이 없으며, 그 절에 창오(昌悟) 225) 와 거관(巨寬) 226) 이라는 승려가 있는 것 역시 그 절의 난치병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놈들이 하찮은 중으로서 여러 해 동안 서울 근교의 산들에 머무르면서, 중들을 꾀고 협박하여 절 재산을 탕진했는데, 말과 외모가 간사스럽고 종적이 수상합니다. 무뢰배와 결탁하고 외람되이 막중(莫重)한 곳 227) 을 빙자해서, 오로지 수령을 모함하고 관속들에게 위엄을 세우는 것만을 일삼는 것이 제놈의 수법인즉, 관리가 관리 노릇 못 한 지가 오래입니다. 토호들이 시골구석에서 무단(武斷)하고 관부(官府)를쥐고 흔드는 일이 옛날부터 간혹 있었지만, 중들이 이같이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지금 처음 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번에 내수사(內需司)의 관문 내용을 고쳐 바꾸고 용동궁(龍洞宮) 228) 의 수본(手本 손수 작성한 서류 )을 첨부하였는데, 제일 먼저 강원도 양양에 있는 신흥사는 바로 열성조(列聖朝)의 구적(舊蹟)이 봉안된 곳이라는 점을 들고 수령이 삼가 받들어 행하지 않은 죄를 나열해 놓았으니, 이는 모두 창오와 거관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다면, 제 한 몸에 갑자기 닥친 재난은 본시 걱정할 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고을의 폐해는 어찌하며 나라의 기강은 어찌하겠습니까?
‘열성조의 구적’이라고 한 것은 본부에 있는 낙산사(洛山寺)와 같은 곳을 이름이요, 신흥사가 아닙니다. 세조 병술년(1466)에 낙산사를 임시 숙소로 삼으신 일이 있는 데다, 성종의 친필이 열 겹이나 싸여 보물로 간직되어 있고, 숙종의 어제(御製) 현판은 사롱 (紗籠) 229) 에 싸인 채 걸려 있어 지금까지도 보배로운 글씨가 하늘을 돌며 빛을 발하는 은하수처럼 230) 휘황찬란하며, 명 나라 성화(成化) 5년(1469)에 주조한 큰 종에는 당시의 명신(名臣)들이 왕명을 받들어 기록한 글이 있어 한 절의 귀중한 보물이 되었으니, 이것들은 모두 낙산사의 오래된 보배인 것입니다. 신흥사의 경우는 명 나라 숭정(崇禎) 갑신년(1644)에 새로 창건하여 내력이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역대 임금들이 남긴 글들이 본래 있지 않은데도, 감히 모호하게 막중한 곳을 끌어다가 궁속(宮屬)들을 속여서부탁하여 수본을 발급받기를 도모하기를 이처럼 쉽게 하였으니, 다른 것은 오히려 어찌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작년에 감영과 본 고을에서는 비록 실상이 이와 같은 것을 알았지만, 다만 말이 막중한 곳과 관계되고 일이 내수사에 관련되는 까닭에, 감히 드러내놓고 분명하게 말할 수없어서 미봉하여 넘겼으니, 중들이 더욱 패악을 부리는 것은 전적으로 이 때문인 것입 니다. 그 절이 본시 전답의 소출이 많아서 부자 절이라 일컬어지는데도, 분수를 지키지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정초에는 취한 김에 아료를 부려, 떠돌이 걸인들을 묶은 채로 구타하여 거의 살옥(殺獄)을 이룰 뻔한 것이 6명이나 되었습니다. 고한(辜 限) 231) 이 이미 지났는데, 5명은 겨우 목숨을 건져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게 되었으니 거의 걱정이 없겠으나, 그중 1명은 상기도 위태로운 지경이니 앞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한 가지 일만 보더라도, 중들의 버릇이 세력을 믿고 완강하고 막돼먹어 못할 짓이 없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원당(願堂) 232) 을 다시 설립하는 일은책임진 곳이 따로 있으며 한낱 중들과 관련된 바가 아니니, 사리(事理)로써 헤아려 보면 실로 ‘쥐 잡다 그릇 깰’ 우려는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러한 사정을 비변사에 보고하거나 장계(狀啓)를 올려 조사해 주도록 청함으로써, 요망한 중놈들이 막중한 곳을 빙자하여 속임수를 일삼는 죄를 속히 시정하게 해 주심이 어떻겠는지요?
현재 병세를 돌아보건대 감기까지 더치는 바람에 묵은 증세가 한꺼번에 발작하여 실로 무리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나, 바야흐로 군사훈련에 달려가야 할 때를 당하여 기일이 몹시 촉박할 뿐더러 여러 해 동안 누적된 속오군(束伍軍) 233) 의 궐액(闕額 부족한 수효 )을 보충할 방도가 없으니, 과연 병을 말하고 사무를 폐할 시기 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 답답한 개인적인 사정을 어찌 이루 다 아뢰겠습니까. 군사훈련이 지난 뒤에는 사면(辞免)을거듭 간청해야 될 형편이니 하량하여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우선 이만 줄입니다.
上巡使書
伏惟新元. 旬宣體履神相萬重. 侍候一向康寧. 伏庸慰賀無任下誠. 下官前冬重經毒感. 兩脚無力. 因成膝攣. 房闥轉動. 亦須扶擁. 歲翻此久. 尙稽就拜. 下懷悵鬱何極. 今此禮曹關內. 神興寺雜役蠲减之後. 紙墨未乾. 其所侵徵十倍於前. 至有首鄕吏上使嚴刑之擧. 爲其守土者. 萬萬震懔. 靡所容措. 去年夏間. 蠲减節目. 自營門反貼成冊. 一置營門. 一置本府. 一付該寺. 以爲憑考之地. 則設有貪官汚吏. 寧肯區區於數卷之紙. 加徵於節目之外. 而官屬輩方爲該寺所脅持. 兢業度日. 猶恐其一毫執頉. 亦安敢橫肆十倍之侵徵乎. 揆以利害. 萬萬無此理 也. 誠如關辭. 則以若無所顧忌之寺僧. 何不枚擧節目. 卞正于本官. 亦何不卽呈議. 送于巡 按之下. 而乃敢不有營邑. 越訴京司. 無難搆捏. 至於此極乎. 下官莅任. 自去年十月之望. 至 今晦間. 纔滿百日. 其於邑事. 未諳頭緖. 則凡諸施措. 只按成規. 所謂朔納紙地. 不過數卷. 雖名官納自來. 優價貿用. 而今又添給價本矣. 其他營需紙席. 上司例納. 莫不以本錢直買. 逐條係價. 一按可知. 而此猶細事. 不須多卞. 大抵本府之有神興寺. 卽一邑心腹之疾. 而該寺之有僧名昌悟巨寬者. 亦一寺心腹之疾也. 渠以幺麽緇徒. 逗遛京山. 許多年所. 而誘脅衆 僧. 蕩盡寺財. 言貌姦譎. 蹤跡詭秘. 締結無賴. 猥托莫重. 專事陷害長吏. 立威官屬. 此其伎 倆則官不得爲官久矣. 土豪之武斷鄕曲. 把持官府. 古或有之. 僧徒之若是橫恣. 今始初見. 乃者飜關內司. 粘連龍洞宮手本. 首擧江原道襄陽所在神興寺. 卽 列聖朝舊蹟奉安之處. 臚列守令不謹奉行之罪. 此莫非昌悟巨寬之所誣罔也. 此不明卞. 則一身駭機. 固不足恤. 而其 於邑瘼何. 其於國綱何. 列聖舊蹟云者. 如本府所在洛山寺之謂也. 非神興寺也. 光廟丙戌. 洛山爲駐蹕之所. 而 成廟宸翰十襲寶藏. 肅廟御製. 紗籠板揭. 至今 寶墨. 煌煌雲漢昭回. 成化五年所鑄大鍾. 俱有當時名臣承 命銘述. 爲一寺重器. 此皆洛山古寶也. 至若神興寺. 新刱於 崇禎甲申. 百餘年間. 列朝遺文. 本無有在. 而乃敢漫漶引重. 瞞囑宮屬. 圖出手本. 若 是容易. 則他尙何說. 昨年營邑. 雖知實狀之如此. 而第以語涉莫重. 事關內司. 故莫敢明言 暢說. 彌縫以度. 則僧徒之益肆悖慢. 職此之由也. 該寺素饒田產. 號稱富刹. 多不守分. 甚至 歲初. 乘醉起鬧. 縛打流丐. 幾成殺獄. 多至六名. 辜限旣過. 五名則僅得生道. 扶杖起動. 庶可無虞. 其中一名. 尙在危境. 前頭之事. 有未可知. 卽此一款. 足驗僧習怙勢頑悖. 無所不至. 願堂復設. 所重有在. 非關於一僧徒. 則揆以事理. 實無忌器之嫌. 伏望將此事情. 或論報備局. 或狀請勘覈. 亟正妖僧藉重誣罔之罪. 如何如何. 顧今病勢. 又挾風感. 宿症俱作. 實爲 難强. 而方當赴操. 期日甚促. 束伍之多年闕額. 充補無計. 則果非言病廢務之時. 私情悶迫. 如何勝喩. 過操後勢. 將控辭申懇. 庶蒙諒悉. 姑此不備.
『연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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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순찰사에게 올림: 1801년 음력 1월 강원 감사에게 양양 신흥사(神興寺) 중들의 행패를 바로잡아 줄 것을 청원한 편지이다. 그러나 강원 감사가 미온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해 봄에 연암은 병을 핑계 대고 양양 부사직을 사임했다고 한다. 『過庭錄』
220) 상사(上使):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명하여 죄인을 잡아 오게 하는 일을 말한다.
221) 반첩(反貼), 보내온 공문서에 의견을 첨부하여 돌려보내는 것을 말한다.
222) 권(卷): 한지를 세는 단위로, 스무 장으로 된 한 묶음을 말한다.
223) 의송(議送): 백성이 고을 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관찰사에게 올리는 항소장(抗訴狀)을 말한다.
224) 삭납지지(朔納紙地): 매월 초하루마다 바치는 지물(紙物)을 말한다.
225) 창오(昌悟): ‘창오(暢悟)’의 오기인 듯하다. 창오(暢悟)는 1797년(정조 21) 거관(巨寬)과 함께 신흥사의 명부전(冥府殿)을 중수했으며, 1801년(순조 1) 역시 거관 등과 함께 용선전(龍船殿)을 창건하고 열성조(列聖 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도 그는 1813년(순조 13) 거관 등과 함께 보제루(普濟樓)를 중수 하고, 1821년(순조 21) 거관 등과 함께 극락보전(極樂寶殿)을 중수하였다.
226) 거관(巨寬): 1762~1827. 호를 벽파(碧波)라고 하며, 율승(律僧)으로서 많은 제자를 두었다. 창오(暢悟)와 함께 신흥사 내의 건물들을 힘써 중수하였다. 신흥사에 있는 그의 부도(浮屠)에는 강원 감사 정원용(鄭元容) 이 찬한 비가 있다.
227) 막중(莫重)한 곳: 왕실을 가리킨다.
228) 용동궁(龍洞宮): 명종(明宗) 때 세자궁(世子宮)으로 설치한 궁인데, 한양의 서부(西部) 황화방(皇華坊)에있었다. 명례궁(明禮宮 , 덕수궁〈德壽宮〉)ㆍ어의궁(於義宮)ㆍ수진궁(壽進宮)과 함께 4궁이라 불렸다. 이러한 궁들은 토지를 약탈ㆍ매입하거나 면세 특권을 이용하여 수세지(收稅地)를 확대하는 등으로 재산 늘리기에 힘써 폐단이 많았다.
229) 사롱(紗籠): 현판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씌운 천을 말한다.
230) 하늘을 …… 은하수: 원문은 ‘雲漢昭回’인데, 『시경』 대아(大雅) 운한(雲漢)에 “저 밝고 큰 은하수는 하늘을 따라 그 빛이 도네.(倬彼雲漢 昭回于天)”라고 하였다.
231) 고한(辜限): 보고기한(保辜期限)의 준말이다. 남을 상해한 사람에 대하여 피해자의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처벌을 보류하는 기간으로, 이 기간 안에 피해자가 사망하면 살인죄가 성립되었다.
232) 원당(願堂): 역대 임금들의 명복을 비는 법 당(法堂)인데, 궁중에 있는 것은 내원당(內願堂)이라 하였다. 여기서는 창오와 거관 등이 설립을 추진한 신흥사의 용선전(龍船殿)을 가리킨다.
233) 속오군(束伍軍): 선조(宣祖) 이후 향촌을 지키기 위해 『紀效新書』의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양인(良人)과천인(賤人)을 혼합하여 편성한 지방군(地方軍)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