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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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산사제영(洛山寺題詠) 도계(陶溪) 윤홍규(尹弘圭) 244)
물결 출렁이는 관음굴 蕩漾觀音窟
아득히 높은 의상대 岧嶢義相臺
기이한 소문과 괴이한 일 많아 異聞多弔詭
이야기한들 몇 사람이나 믿을까 說與幾人乖
『陶溪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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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윤홍규(1760,영조36 ~ 1826,순조26)의 본관은 파평(波平)이고 초명은 두기(斗基), 자는 의보(毅甫), 호는 도계(陶溪)이다. 1792년(정조16) 생원(生員)이 되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의선공감가감역(擬繕工監假監役)을지내다가 1800년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고, 이어 익찬(翊贊)이 되었다. 1814년(순조14) 창녕현감을 거쳐 1818년 고성군수(高城郡守)에 이르렀다. 평소 학문에 전심하여 주자서(朱子書)를 비롯, 성리학과 역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아 사람들이 그를‘관서부자(關西夫子)’라 하였다. 또한, 시문에도 뛰어나 고성군수(高城郡守)로 있을 때 지은≷楓嶽紀行詩≸는 유려한 문체를 구사한 작품이다.
저서에 『喪禮笏記』 『陶溪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