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록
페이지 정보
본문
○ 양양(襄陽)의 낙산사(洛山寺)에서 생리(生梨)와 감곽(甘藿)을 해마다 바치는 것에 대해 특별히 감해 주라고 명하였다.
우승지 서정수가 아뢰기를,
“옛날 국초(國初)에 양양의 낙산사에서 생리와 감곽을 명례궁(明禮宮)에 해마다 바치던것이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당시 생리는 좋은 품종이 있고 감곽은 사전(賜田)이 있었기 때문에 절의 승려들이 이 토산물로 보잘것없는 정성을 표하였는데, 그 후 수백 년이래로 배나무와 곽전(藿田)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는데도 전례가 되어 지금까지 그대로 답습하여 수납(輸納)할 때마다 먼 곳에서 사서 취하기 도 하고 경시(京市)에서 사서 바치기 도 하여 지탱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신이 순행(巡行)하여 이르렀을 때해진 장삼을 입은 두세 명의 승려들이 길을 막고 호소하면서 변통해 주기를 간절히 청하였는데, 그 정상을 살펴보면 참으로 대단히 측은합니다. 궁납(宮納)은 비록 정공(正貢)과는 차이가 있으나 진상(進上)하는 일에 관계되므로 견감(蠲減)해 주기를 청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이미 본 바가 있기에 감히 아룁니다.”하여,
하교하기를,
“듣고 나니 매우 불쌍하다. 이후로 특별히 감해 주라고 해궁(該宮) 및 해도(該道)에 분부하라.”하였다.
命襄陽洛山寺梨藿歲納. 特爲減給.
右承旨徐鼎修啓言. 在昔國初. 有襄陽洛山寺生梨甘藿之歲納於明禮宮者. 蓋聞伊時梨有佳
種. 藿有賜田. 故寺僧輩以此土地之產. 用表獻芹之誠. 其後數百年來. 梨樹藿田. 無一見存.
而便成已例. 因循至今. 每當輸納之時. 或買取於遠地. 或貿納於京市. 莫能支吾. 臣於巡到 時. 數三破衲. 遮路呼訴. 懇乞變通. 觀其情狀. 誠甚矜惻. 宮納雖與正貢有異. 事關進上. 不
得請蠲. 而旣有所見. 敢達矣. 敎以. 聞甚可矜. 此後特爲減給事. 分付該宮及該道.
『日省錄』 정조 9년 을사(1785) 6월 21일.무술
○ 낙산사(洛山寺)의 폐단을 없애 소생시킬 방도를 나중에 장문(狀聞)하라고 명하였다.
원춘 감사(原春監司) 이시수(李時秀)가 낙산사의 조곽(早藿) 진상(進上)에 따른 폐단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해 달라고 치계한 데 대해, 하교하기를,
“절이 이미 쇠잔해졌는데 조곽 또한 값이 뛰었으니, 전례만을 고집하여 몇 안 되는 승도(僧徒)들에게 해마다 내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쌍히 여길 일이다. 이 장계에 대해 회계(回啓)할 것 없으니, 궁납(宮納)하는 조곽을 올해부터 특별히 모두 탕감해 주라. 낙산 사는 나라 안에서 가장 뛰어난 명찰(名刹)이어서 열조(列朝)에서 하사해 준 전토(田土) 와 노비(奴婢), 염전(鹽田) 등이 매우 넉넉하고 후하였는데, 근래 대부분 유실되어 장차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절을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되는 바가 긴중(緊重)하기때문이니, 이에 대해서는 도백으로 하여금 폐단을 없애 소생시킬 방도를 별도로 강구하여 등문할 만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장문하게 하도록 하라. 이 내용을 묘당으로 하여금행회하게 하라.”하였다.
命洛山寺蘇弊之方. 從後狀聞.
原春監司李時秀以洛山寺早藿進上之弊. 稟處馳啓. 敎以. 寺旣凋殘. 藿亦騰貴. 膠守前例.
年年責徵於數少緇徒. 在所矜念. 此狀聞不必回啓. 宮納早藿. 自今年特竝蕩減. 大抵洛山一 寺. 最稱國中名刹. 列朝賜與田土奴婢鹽田等屬. 極其優厚. 而近皆遺失. 將不得收拾云. 非 爲寺刹也. 所關間係緊重. 此則令道伯另究蘇弊之方. 如有可以登聞者. 從後狀聞事. 令廟堂 行會.
『日省錄』 정조 9년 을사(1785) 11월 12일.무오